노르말 쉬페리외르)에 사르트르가 7등으로 입학한 것은 1924년 8월이나, 기숙사의 한방을 쓴 폴 니장을 비롯해 레이몽 아롱, 조르주 캉길렘, 피에르 기유, 장 이폴리트, 모리스 메를로 ... 퐁티, 다니엘 라가시, 르네 마외 등 뒷날 많게든 적게든 프랑스 인명사전의 지면을 차지할 문필가, 학자들이 그의 동급생들이었다. 1928년 졸업하던 해에 레이몽 아롱이 수석으로 합격한
위와 같은 병리적인 현상에 대해 기존 심리학은 메를로-퐁티과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 위와 같이 메를로-퐁티가 바라보는 신체는 우리가 바라보는 다른 대상들과 같이 객체화된 존재가 아니다. ... 메를로-퐁티의 표현에 의하면 의식은 ‘--을 나는 생각한다’와 같은 데카르트적 개념이 아니다.
이것이 메를로 퐁띠가 말하는 주체적 신체(body-subject)이다. 데카르트의 정신은 더 이상 메를로 퐁띠가 말하는 정신이 아니다. 그것은 신체와 하나가 되어 있는 정신이다. ... 메를로 퐁띠가 현대 체육사상에 공헌한 가장 큰 업적은 인간의 신체를 객체가 아닌 주체로 본 관점이다. ... 메를로 퐁띠의 철학에서 몸과 의식은 다르지만 또한 동시에 전혀 다른 지대에 등록되어 있는 두 개의 독립적 실체가 아니다.
프랑스 현상학자 모리스 메를로 퐁티는 ‘과학은 사물을 조작할 뿐 그것들 속에서 사는 것을 포기하였다’고 말하였다. 이는 바로 미국의 문학 해석에서 일어난 사태를 지칭한 것이다. ... 퐁티의 다음과 같은 비판은 신비평뿐만 아니라 구조주의 비평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작품이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파리의 명문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 다녔는데, 동급생 중에는 M.메를로 퐁티, E.무니에, R.아롱 등이 있었다. ... 퐁티 등의 협력을머니즘이다 L Existentialisme est un humanis- me》(1946)에서 밝혀 두었는데, 그가 말하는 문학자의 사회 참여 란 그 이전의《구토》나 ... 작업이었고, 세계적으로 보아도 제2차 세계대전의 전중부터 전후에 걸친 그 시대의 사조를 대표하는 웅대한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는 노작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메를로
그는 고등사범학교와 소르본 대학에서 장차 매우 유명한 문필가가 될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그중에는 레몽 아롱, 모리스 메를로 퐁티, 시몬 베유, 에마뉘엘 무니에, 장 이폴리트, 클로드 ... 존재론적인 우연성의 체험을 그대로 기술한 듯하였고, 1943년에 발표한 대작 철학 논문 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입장에서 전개한 결정적인 작업이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메를로
개인적으로 메를로-퐁티의 주장대로 경험이 추상적인 사고 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경험이란 것은 중요한 것이다. ... 메를로-퐁티의 주장처럼 인간은 신체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신체라는 것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 메를로-퐁티에 따르면 ‘인간은 육체를 통해 지각하고 신체를 통해 행동하며 신체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므로 인간의 신체는 주체가 된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