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상, 위의 논문, 1990, 28쪽 36) 김희일, 위의 논문, 1962b, 67쪽 37) 김희일, 위의 논문, 1962b, 67쪽 38) 김희일, 앞의 논문, 1962a, 54쪽 ... 김희일은 각기의 설들이 일정한 합리적, 논리적 기초를 가지고 있지만 완성된 논리성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고 언급하였다. ... 「조선근세사 시기구분에 관한 몇 가지 의견」, 『력사과학』4, 과학원 출판사, 1957 , 『력사과학』4, 과학원 출판사, 1957 , 『과학원통보』3, 과학원 출판사, 1957 김희일
於時從兄堂大等正朝賜丹銀魚袋金介一等 어시종형당대등정조사단은어대김희일등 이에 종형인 당대등 정조(正朝)로 단은어대를 하사받은 김희일(金希一) 등이 令鑄成三十段之鐵筒連立六十尺之幢柱 령주성삼십단지철통연립육십척지당주 ... 금석문에도 볼 수 있듯이 이 용두사지 철당간은 김희일 등과 같은 청주 호족들에 의해 지어져 당시 청주 호족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비문에는 ‘김희일 정조, 김석희 대등, 김관겸 대등’ 이라 적혀 있는데, 이처럼 고려 초, 지방의 수장급 호족들에게 수여했던 관계인 정조를 김희일이 받았고 그의 일족들인 청주 김씨들이
이때 사촌형 당대등정조사단은어대 벼슬인 김희일 등이 아우의 바램을 이루고 기울어가는 불가의 위엄을 되살리고자 삼십 층의 쇠통을 겹쌓아 육십척 당간 기둥을 세웠으니, 구름을 뚫고 해를 ... 이 절의 책임자는 석주 대덕, 시주하고 일을 추진한 사람은 김희일 정조, 김수□ 대등, 스님 희□, 김관겸 대등, 공사 감독은 큰스님 신학□□, 전 시랑 손희 대마, 전 병부경 경주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