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덕명(羅德明)·나덕준(羅德峻)·정인홍(鄭仁弘)·한효순(韓孝純)·정개청(鄭介淸)·유종지(柳宗智)·김우굉(金宇宏)·윤의중(尹毅中)·유몽정(柳夢井)·조대중(曺大中)·우성전(禹性傳)·남언경 ... 한편 이중호는 학문연구와 제자양성에 힘써 朴應南·尹毅中·羅士?·尹斗壽 등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으며, 그의 아들인 李潑·李? 형제는 선조대 중반 東人의 중심인물로 활약하였다. ... 박순은 정승으로서 같은 호남사림인 柳希春·기대승 등과 함께 신진사류들이 舊臣들을 물리치고 주도권을 잡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허엽은 선조대 초반 동서분당이 되면서 조식의 문인인 김효원과
천민 출신의 시인 유희경(柳希慶)과도 교분이 두터웠다. 허균은 1609년(광해군 1)에 명나라 책봉사가 왔을 때에 이상의(李尙毅)의 종사관이 됐다. ... 유몽인(柳夢寅)은 『어우야담(於于野談)』에서 “역적 허균은 총명하고 재기가 뛰어났다”면서 어린 시절의 일화를 소개했다. ... 학문은 유성룡(柳成龍)에게 배웠다. 시는 삼당시인(三唐詩人)의 하나인 이달(李達)에게 배웠다. 이달은 둘째 형의 친구로서 당시 원주의 손곡리(蓀谷里)에 살고 있었다.
)> : 상중현(尙仲賢)의 유의전서(柳毅傳書) : 석군보(石君寶)의 곡강지(曲江池) : 이호길(李好吉)의 장생자해(長生煮海) ... 전기라 하겠다. ◆ 당대 전기의 영향을 받은 원대 잡극 : 백박(白樸)의 오동우(梧桐雨) : 왕실보(王實甫)의 서상기(西廂記) ... 髥容傳)> : 장봉익(張鳳翼)의 홍불기(紅拂記) : 구오매화서(勾吳梅花墅)의 귤포기(橘浦記) 위의 작품들은 당대 전기의 내용을 가지고 어떤 것은 부분적 수정을 가하기도
거기에 더 나아가 경상좌도 지역 관군으로 활동한 朴毅長의 행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 본론 朴毅長은 임란이 일어나기 1년전 경주판관에 부임하였고 이듬해 1592년 임란이 발발하였다. ... 임진강을 끼고 조선·명의 연합군과 왜군이 대치하고 있을 때, 일본측 고니시의 강화회담 제의로 이덕형(李德馨)과 일본의 야나가와 초신(柳川調信)·겐소(玄蘇) 사이에 강화회담이 시작되어
「유의전(柳毅傳)」은 「동정영인전(洞庭靈姻傳)」이 본래의 제목인 듯하며, 본 편은 인신통혼(人神通婚)의 이야기이다. ... 있어서는 고문을 구사하였고 전기소설에서 보여준 산문과 시의 결합은 후세 강창문학의 발전에度)의 「고경기(古鏡記)」를 비롯하여 무명씨의 「보강총백원전(補江總白猿傳)」, 이조위의 「유의전(柳毅傳 ... 따라서, 염정류의 전기 소설이 많이 등장하였는데, 장작(張)의 「유선굴(游仙窟)」, 진현우의 「이혼기(離魂記)」, 허요좌(許堯佐)의 「유씨전(柳氏傳)」, 이경량의 「이장무전(李章武傳
유인석(柳麟錫) 조선 말기의 의병장(1842~1915). ...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자는 여성(汝星), 호는 의암(毅庵)이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을 체결할 때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김홍집의 친일 내각이 성립되자 의병을 일으켰으나 관군에게 ... 정부의 개화정책에 대하여 이항로의 제자 유중교(柳重敎)는 “선비란 조정에서 아무 것도 받은 바가 없을지라도 그의 자리는 천위(天位)요, 그의 임무는 천직(天職)이다.”라고 하여 선비가
엄중한 도학자였던 그는 옛 경전과 정주학(程朱學)은 물론 국내의 이황(李滉)과 이이(李珥), 그리고 유형원(柳馨遠) 등의 학문에도 정통하였다. ... 그는 집안은 몰락한 남인(南人) 출신으로 그의 증조부 이상의(李尙毅)는 의정부 좌찬성(左贊成)을 지냈고, 조부 이지안(李志安)은 사헌부 지평(持平)을 지냈다.
유의전서(柳毅傳書)? : 석군보(石君寶)의 ?곡강지(曲江池)? : 이호길(李好吉)의 ?장생자해(長生煮海)? : 정광조(鄭光祖)의 ?천녀이혼(?女離魂)? : 정광조(鄭光祖)의 ? ... @이조위(李朝威)의 유의전(柳毅傳):사람과 龍女 사이의 사랑을 다룬 것으로 신괴적 내용 속에 다분히 애정적 색채가 많은 작품이다.
조병세(趙秉世), 홍만식(洪萬植), 이상철(李相哲), 김봉학(金奉學), 이한응(李漢應) 등은 죽음으로 항거하였으며, 민종식(閔宗植), 최익현(崔益鉉), 신돌석(申乭石), 유인석(柳麟錫 ...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이후 소네 아라스케[曾彌荒助],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등의 세 통감을 거치는 동안 일제는 한국의 외교권을 대행함은 물론 고문정치(顧問政治)를다
천민 출신의 시인 유희경(柳希慶)과도 교분을 두터웠다. 허균은 1609년(광해군 1)에 명나라 책봉사가 왔을 때에 이상의(李尙毅)의 종사관이 되었다. ... 학문은 유성룡(柳成龍)에게 나아가 배웠다. 시는 삼당시인(三唐詩人)의 하나인 이달(李達)에게 배웠다. 이달은 둘째 형의 친구로서 당시 원주의 손곡리(蓀谷里)에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