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의 원인과 영향, 그 대책
- 최초 등록일
- 2009.03.15
- 최종 저작일
- 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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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황사현상의 역사와 발생원인과 영향, 대응책에 관한 레포트 입니다.
기사자료와 그림자료가 담겨져 있으며
각종 참고 문헌, 잡지자료와 사이트를 참고로 작성하였습니다.
목차
1. 황사란
2. 황사의 역사
3. 황사의 발생원인
4. 황사의 영향
5. 대응책
※ 참 고 문 헌 ※
본문내용
1. 황사란
황사는 일반적으로 바람에 의하여 하늘 높이 불어 올라간 미세한 모래먼지가 대기 중에 퍼져서 하늘을 덮었다가 서서히 떨어지는 현상 또는 떨어지는 모래흙을 말한다. 황사의 성분은 주로 흙과 모래의 주성분인 규소, 철, 칼슘 등 산화물로 되어 있으며, 납, 카드뮴, 알루미늄 구리 등 중금속을 포함할 수 있다.
2. 황사의 역사
중국에는 3000년 전에 황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황사-21세기평화연구소 편, 한중황사조사연구단, 동아일보사, 2004, P.44.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기록이 남아있으며, 옛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황사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1) 삼국시대
삼국사기에 기록된 황사 관련 현상의 기록(표 1)으로 최초의 것은 174년(신라 아달라왕 21년) 음력 1월 `우토(雨土)`라는 기록이다. `흙이 비처럼 내린다` 는 뜻으로 하늘에서 흙먼지가 낙하하는 현상을 묘사한 것이다. 서기 850년까지 신라, 백제, 고구려에서 `우토(雨土)`라는 용어가 사용되었고, 때로는 황사현상이 관측된 기간이 하루 또는 5일 동안이었음을 기록하였다.
2)고려시대
고려사에는 황사현상의 정의가 등장하는데, "비가 옷을 적시지 않고 흙(土)이 있으니 이를 `매()` 라 부른다."는 기록이다. 또한 유경로(1994)와 세종사업기념회(1999)의 서운관지(書雲觀志)에 의하면, `土雨는 모시모경에 사방이 어둡고 혼몽하고 티끌이 내리는 것 같다고 기록한다`는 관측 방법까지 상세하게 정의되어 있다. 고려시대 1017년부터 1372년까지 무려 43건이나 `우토(雨土)`가 등장하지만, `황사(黃砂)`라는 표현은 나타나지 않는다(전영신, 2001).
3)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황사현상을 과학적이고 정확하고 자세하게 묘사하였으며, 먼지 현상으로서 황사현상 42건, 황사와 비 또는 눈까지 섞여 내리는 사례 8건, 안개와 우박과 관련되어 나타난 황사 현상 7건을 발췌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황사현상(전영신, 2000)은 `토우(土雨)`라는 표현이 주로 사용되었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는 `흙이 비처럼 내리다` 라는 동작으로 묘사되었지만 조선시대에는 `흙비`라는 명사형으로 황사 현상을 표현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수도(首都)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관측하여 보고된 기록도 발견되었다.
참고 자료
황사-21세기평화연구소 편, 한중황사조사연구단, 동아일보사, 2004
동북아지역의 황사 피해 분석 및 피해 저감을 위한 지역 협력 방안Ⅱ, 강광규 외.
한국 환경 정책․평가연구원, 2004,
황사피해방지종합대책 2005.3.8
과학동아 2002년 4월호
www.asiasandstorm.org
‘황사’ 홈페이지 - http://yellow.metri.re.kr/
조선일보 - http://www.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