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시기 미국과 독일의 대공황 극복과정을 조명한 근대경제사 레포트입니다.
- 최초 등록일
- 2008.12.23
- 최종 저작일
- 2008.12
- 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1차 대전 이후 대공황이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그에 대한 각국의 대응방안에서는 다른점도 있었고 차이점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세계대전이후 급부상한 미국과 나라가 망할 처지에 놓이기까지한 독일이 함께 대공황을 맞이했을때, 그 대처과정에서 차이가 존재하였습니니다. 과정의 차이는 결과의 차이를 발생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 루즈벨트에 의해 추진되는 미국식 뉴딜정책과 히틀러에의해 추진되는 독일식 나치즘식 정책입니다. 두나라의 대응방안을 비교, 검토해 보았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1차 대전 후, 영원한 번영eternal prosperity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던 미국은 은행공황, 금융공황 등을 겪으며 1929년 모든 경제지표가 하락하는 대공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미국 혼자만의 위기로 그치지 않고,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확산된다. 금본위제 이탈, 블록화, 각종 재정정책들이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응책으로 마련되고, 대공황 이전시기와 다르게 국가가 지출의 주체로서 투자를 한다는 생각이 본격화되기에 이른다. 특히 재정정책은 엄청나게 불어난 실업을 구제하기 위한 정부 지출로서의 의미가 강했고, 이 과정에서 미국과 독일의 경제 정책 추진 방법은 다르게 나타난다. 뉴딜new deal식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재정정책과 파시즘fascism식으로 불리는 독일의 재정정책에 관해 그 과정과 결과의 차이가 궁금해졌고 미국과 독일의 대공황 회복에 관한 두 논문을 선택했다.
독일은 모든 유럽국가들 중에서 세계대공황의 충격이 가장 컸던 국가이다. 세계 대공황 기간 중 공업생산의 급격한 감소, 실업률의 급증, 자본스톡의 절대적 감소까지 경험한 독일의 경제는 1932년 여름 이후 대공황으로부터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하고, 그 후 1938년까지 공업 생산이 바이마르 공화국시대 중에서 최고 호경기를 기록한 해인 1928년의 수준을 1/3 정도 상회하는 등 여타 산업 국가들에 비해 경기가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로 상승한다. 이를 ‘독일의 경제기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공황 회복기 독일의 자본축적은 민간부문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비생산적인 군비확장을 위한 지출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한계를 가진다. 실제로, 독일의 대공황이 끝난 1932년 여름부터 1938년 사이에 이윤율이 지속적으로 현저하게 상승했는데, 이는 제조업 부문의 자본계수와 임금율의 급격한 하락에 기인한다.
참고 자료
1. 《뉴딜 경제정책의 공과》 양동휴, 2000, 경제사학회, 경제사학
2. 《대공황 회복기 독일의 자본축적》 이헌대, 2004, 경제사학회 경제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