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실러-군도(도적떼)
- 최초 등록일
- 2008.10.30
- 최종 저작일
- 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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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군도(群盜)》는 ‘질풍노도 시기’ 때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함께 주요한 작품으로 프리드리히 작품 세계의 단초입니다.
목차
▼작품의 시대적⁃사회적 상황
▼작가와 작품세계
▼《군도》의 작품세계
▼《군도》의 작품세계
본문내용
▼작품의 시대적⁃사회적 상황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까지 독일은 절대주의 시대였다. 영방국가 형태를 이루고 있던 독일은 신·구교간 종교적 갈등으로 일어난 내전인 30년 전쟁(1618-1648) 이후 함스부르크가의 오스트리아와 호엔쫄레른가의 프로이센으로 압축된다. 프로이센은 17세기 중엽부터 그 영향력이 점점 확대되어 18세기에는 오스트리아에 맞서 최상의 군사력을 지닌 경쟁국으로 부상했다. 프리드리히 대제(1740-1786)가 1763년 오스트리아를 물리침으로써 프로이센은 유럽의 주요 강대국으로서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와 같은 서열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차츰 국가를 창설하는 것은 신의 의지나 절대군주의 의지가 아니라 주권을 가진 국민의 의지라는 사상이 확대되어감으로써 절대주의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군도(群盜)》가 등장한 때는 그러한 절대주의 왕정 치하에서 시민 사회와 프랑스 혁명으로 넘어가는 격변의 시기였다. 시민 계급은 기존 사회 체제의 멍에에 눌려 정치적으로 뜻을 이룰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는 지나치게 이성을 강조하고 감정을 무시하던 계몽주의 경향의 사회 풍조가 만연해 있었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문학이 시민적인 자의식의 표출수단으로 크게 부각되는데, ‘질풍과 노도(怒濤)(Sturm und Drang,슈투름 운트 드랑)’가 그것이다. 질풍과 노도는 1765년에서 1785년에 걸쳐 독일에서 일어난 문학운동이다. 괴테를 비롯한 시민 계급 출신의 젊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이성과 합리를 중시하는 계몽주의 사조에 반대하며 자연적 본능과 감정의 발산‧ 사회적 한계에 얽매이지 않는 천재적인 개성을 찬미하며 기존의 세계 질서를 부정하고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당시 사회적 기반이 부족한 탓에 그 영역은 문학에만 국한된 채 단 기간에 소멸되었다. 그러나 독일에서 시작된 이 운동의 영향은 전 유럽으로 퍼져 낭만주의를 형성하게 만들었다.
《군도(群盜)》는 ‘질풍노도 시기’ 때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함께 주요한 작품으로 꼽힌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사회적 인습과 이성의 굴레에 억눌린 개인의 감정과 자유로운 해방을 부르짖었다면, 《군도》는 ‘의적’ 모티프로서 정치적 억압과 폭정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성격이 강하다.
참고 자료
프리드리히 실러/군도/범우사
프리드리히 실러/도적떼/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