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만에 읽는 로마제국
- 최초 등록일
- 2008.09.26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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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3일만에 읽는 로마제국의 요약본입니다.
목차
1장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초기 로마의 변천
2장 호미와 창-공화정을 지탱한 사람들
3장 로마의 팽창-세계제국으로의 길
4장 공화정의 위기
본문내용
1장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초기 로마의 변천
군신 마르스의 아들 로물루스에 의해 건국된 초기의 로마는 세부족으로 이루어진 씨족들의 연합체로서 왕정의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6대째 세르비우스 왕에 의해 대개혁이 단행되어, 씨족제가 해체되고, 도시국가로서의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여러면에서 에트루리아의 영향이 컸던 로마는 에트루스키계의 왕 밑으로 왕권이 강화되었었는데, 혈통 귀족들에 의해 왕이 추방되고, 에투루리아의 지배에서 벗어나면서 기원전 509년 공화정이 성립되었다. 공화정은 선거로 선출되는 정부관이 왕을 대신한 명령권을 행사하며, 원로원은 조언을 제공, 또 선거를 가능케 하는 모든 성인남자의 모임인 민회가 있었다. 이렇게 로마는 귀족중심의 정치이면서도 평민의 권리 또한 인정하는 독특한 정치체제를 발전시키게 된 것이다.
로마의 건국신화에서 로마의 시조는 늑대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와 레무스이다. 이들이 우여곡적 끝에 그들이 자란 테베레 강가에 거점을 정한 것이 바로 도시 로마이다. 초대왕이 된 로물루스는 도시 확대를 위해 외래의 범죄자까지도 시민으로 인정, 받아들였고, 부족한 여성들은 이웃나라 사비니에서 약탈하기도 했다.
초기의 로마의 전투에서 씨족의 수장, 귀족들은 선두에서 활약하는 영웅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들은 소규모 전쟁을 통해 개인적으로는 영광을 얻었으며, 약탈과 전리품 갈취로 생활을 하였던 것 같다. 이들은 중장보병이라는 전술을 도입했으며,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싸웠기 때문에 개인의 전투기능보다는 단결력이 중요했다. 토지소유 농민이 무장 자기부담으로 참가하는 중장보병군은 결국 로마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기원전 509년에 왕정은 폐지되었고, 왕의 명령권을 선거에 의해 선출된 집정관이 이어받음으로서 공화정이 성립되었다. 로마 공화정의 최고권력자는 혈통귀족에서 선출된 2명의 집정관 이었다. 이들은 전장에서 시민군을 지휘하는 최고 사령관이기도 했다. 이들의 임기는 1년으로 매년 민회에서 선출되었다. 원로원의원은 종신이지만 본인이 원할 경우 60세에 은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무관직을 혈통귀족이 독점했기 때문에 결국 이에 불만인 평민과의 사이에 신분투쟁이 벌어졌다. 상류층의 권리 신장 및 신귀족의 출현과 병행하여 로마 군은 집정관의 지휘 하에 움직이는 시민에 의한 4개의 군단제가 정비 되었다.
초기의 로마는 정복한 여러 공동체를 병합하여 영토를 키워나갔다. 그들 민족의 자치와 독립을 인정하면서 연방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그들은 이런식으로 정복이 수월해 지자 동맹국과 조약에 의해 관계를 약정하는 조약국이라는 방법을 활용하여 어제의 적을 내일의 아군으로 만드는 정책을 써고, 이로써 로마는 이탈리아 전토를 거의 대부분 장악하고 이탈리아 연방체를 구축하였다. 연방체제의 완성은 각 민족공동체의 자치와 독립을 인정하면서도 이탈리아의 병력을 최대한 동원할 수 있었다.
참고 자료
사카모토히로시/이계성/서울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