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농민 전쟁의 전개와 그 역사적 성격(요약)
- 최초 등록일
- 2008.07.23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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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갑오농민 전쟁의 전개와 당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요약내용.
목차
1)고부봉기
2)3월기포
3)집강소 체제
4)9월 기포
본문내용
갑오농민전쟁의 전개와 그 역사적 성격
- 갑오농민전쟁의 전개과정과 그 역사적 성격을 주로 남.북접의 대립과 대부밍 싸움 이라는 문제에 초점.
1) 고부봉기
군수 조병갑의 자의적인 가렴주구에 항거. 1984년 2월 전봉준을 지도자로 농민이 관청을 습격한 것을 계기로 시작.
<직접적 요인>
군수 조병갑의 가렴주구에 있었지만, 봉기의 지역이었건 고부가 조선에서도 손꼽히는 미작지대에 속해 있음으로 해서, 부유한 고을이었으므로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 대상은 부민, 농민, 빈민을 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당시 고부봉기에서는 ‘부농’층이 봉기농민 가운데 그에 상응하는 역할을 한 것이 추측된다.
<모순적 양면성>
그러나 이러한 ‘부농’고 일부 중간층 농민은 봉기의 구성이었지만, 일부에서는 그들은 봉기농민의 투쟁대상이 되기도 하였다는 점을 지적해야만 한다. 이 고부군의 말단층에 관한 모순되는 두 가지의 사실(‘부농’ 및 중간층은 봉기의 가담자이기도 하면서, 투쟁의 대상)은 그들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고부봉기 당시에 그들이 전체적으로 규탄 공격당한 경울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봉기농민의 지도자 구성에서 볼 수 있는데, 전봉준파는 주로 ‘부농’인 말단관리층을 지도자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고부봉기가 전체적으로 말단관리(‘부농’)층도 참가한 농민층 전체의 지방 봉건권력에 대한 싸움이었다 볼 수 있다.
2) 제1차 전반적 농민봉기 (3월기포)
고부봉기 후 수습처리를 위해 파견된 중앙정부의 안핵사 이용태의 탐학행위 때문이었다.
<직접적 요인>
이 시기를 기다리고 있던 전봉준은 이용태의 탐학행위를 절호의 기회로 삼아 각지의 농민 지도자와 소위 남접파의 주도에 의한 봉기의 시작. (4월26일~6월10일 약 2개월) 전주를 점령, 관군측에 “패정개혁안’을 제시하고 관측에서 승인 함(전주화약)으로써 3월 기포는 끝남.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