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 장편 `무정`의 줄거리와 감상
- 최초 등록일
- 2008.05.12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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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염상섭의 대표적인 장편소설인 `무정`을 읽고
개인적으로 줄거리를 정리하고
비평적인 안목으로 인물중심 분석한 감상문입니다.
(작성하고 보니 김동인의 `춘원연구` 비판과 유사한 양상을 보임)
목차
1. 무정의 줄거리
2. 감상
본문내용
‘무정’은 교과서인가 문제집에서 형식이 교육의 중요성을 세 처녀들에게 감동적인 연설로 역설하는 부분만을 보았었다. 비록 일부분이라 전후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충분히 감동적이었고 마치 나에게도 계몽에의 불이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듯 했다. 그리고 오늘날, 생각보다 두꺼운 책이었던 ‘무정’을 다시금 읽어도 후반부에서 느낀 감동은 내가 직접 형식으로부터 ‘과학! 과학!’을 듣는 것 같다. 또한 이제까지는, 이렇듯 열정적인 결말을 보고선 제목인 ‘무정’이 영 따로 노는 느낌이었는데 책을 다 읽으니 비로소 ‘무정’과의 관련성을 알겠다. 하지만 제목이 왜 무정일까? 이 소설은 조선의 계몽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정이 없음을, 무심함을 탓하려는 것일까. 그리하여 이 소설은 ‘계몽소설’로 추앙받기 보다는 남녀간의 애정문제를 다뤄 기피한 ‘통속소설’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부정적인 인물은 형식이되, 교육자로서는 훌륭한 기상을 가진 야누스의 얼굴이다.
‘무정’을 읽는 내내 이형식의 못남을 탓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무정’에 대한 감상을 이형식을 부정적인 면을 중심으로 한 인물분석으로 하고자 한다.
첫째로 이형식은 사나이가 한 입가지고 두말한다. 즉, ‘병’주고 ‘약’주는 사람이다. 주변인물에 대해서 악담을 퍼붓다가도 생각을 고치더니 마치 큰 아량이라도 베풀 듯 다시 그 사람을 위하여 준다. 사람은 결국 귀천이 없고 상층 계급으로 으스대는 것은 조그마한 돌 위에 올라서서 내가 더 높다,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서 기생 계월향과 박영채를 따로 보았다. 이것은 얼마나 모순되는 생각인가?
영채는 그 동안 어떻게 굴러다녔는지 모르는 계집이라. 이 모든 것이 합하여 형식 에게는, 영채는 암만해도 선형과 평등으로 보이지를 아니하였다. <형식의 말>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