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주의 법사상
- 최초 등록일
- 2007.11.29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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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관념주의 법사상에 대한 간략한 정리입니다ㅏ.
목차
1.序
2. 관념주의의 배경
3. 칸트
(1) 칸트 이론의 기초
(2) 도덕이론의 일부인 법이론(도덕론)
(3) 법률론과 자연법
(4) 국가론
(5) 세계질서와 영구평화
(6) 칸트 이론의 비판과 평가
4. 피히테
(1) 근본사상
(2) 법론
(3) 국가론
5. 헤겔
(1)이론의 체계와 변증법
(2) 법론
(3) 국가론
(4) 평가
본문내용
2. 관념주의의 배경
프랑스혁명과 결부되어 18세기의 유럽정신을 특징지우는 사조가 계몽주의였다. 계몽주의가 프랑스나 영국에서와는 달리 독일 시민계급에 의하여 철저하게 발전되지 못하고 실천과의 연관을 벗어난 추상적인 이념으로 변하였는데 여기에는 독일에서만의 잘못된 이유가 있다. 그것은 퇴화된 독일 계몽주의는 독일 민족의 비극과 연관이 있으며 이렇게 발전이 늦은 이유로는 근대 시민사회의 발전이 늦게 온데서도 그 이유가 있다. 많은 역사가들이 독일정신의 출발 혹은 독일민족의 비극이 시작되는 중요한 사건으로 루터의 종교개혁 및 이와 연관된 농민전쟁을 들고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많은 공적에도 불구하고 독일을 종교적으로 분리시킴으로써 독일의 국가적인 통일을 저해하고, 또 내면의 세계를 중심으로 종교와 군주에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함으로써 시민계급의 발전을 저해하였다. 이러한 이유에 연해서 독일은 계몽정신을 그 당시에 철저하게 습득하지 못하고 그 후에도 그것을 제대로 만회할 수 없었다. 그와 더불어 지식인들의 성숙을 꾀할 수 없었고 그것은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하였으며, 문화적인 역할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렇게 독일은 철저하게 황폐화되어가고 있었을 때 이웃의 나라들은 성장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혁명은 독일의 지식인들에게 커다란 자극을 주었고 봉건주의가 무너지면서 시민사회의 형성을 도왔으며 독일의 국가적인 기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칸트로부터 시작되는 독일 관념주의 철학은 프랑스 혁명에 대한 독일적 반응 내지 표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 혁명이 인간의 본질적 자유를 실현해 줄 것으로 생각하지 아니하였다. 왜냐하면 어차피 프랑스처럼 시민계급이 절대주의체제를 전복할 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봉건적 분열 아래 있었던 것이 당시 독일의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자유주의적 경향으로 흐르던 독일시민계급은 그들의 정치적 발언권을 현실정치무대에서 요구하지 못하고 자유주의를 정신의 세계에서 구현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이 시기 혁명의 과학, 반항의 과학인 근세의 자연법론은 절대주의의 전복을 공언하지 못하고 봉건적 절대주의와 밀통하고 있었으며, 시민적 개혁, 혁명사상과 악수하고 있었다. 독창성이 결여된 독일의 계몽정신은 관념의 세계로만 전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통일독일이라는 과제의 해결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속에서 성장한 관념주의는 칸트에게서 계몽기적 법사상의 논리적 완성 형태를 부여받고 순수한 관념의 추구에서 자연법을 초극하면서 위대한 시민사회의 철학을 완성하여 헤겔에게서 결실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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