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07년에 무슨 일이?
- 최초 등록일
- 2007.10.29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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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법종 교수의 주장에 대해~~~ 정리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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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법종 교수의 주장은 “고조선 본거지는 낙랑군이 아닌 현토군 이었고 후에 이곳에 고구려가 세워졌다.” 로 보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고조선 수도의 위치가 달라질 수도 있는 해석상의 여지를 준다. 이 주장대로라면 단군신화를 시조신화로 보유한 송양왕 집단은 고조선 붕괴 당시 왕검성 근처에 존재한 정치세력일 가능성이 있으며, 그들이 고구려 건국의 주역 중 하나가 됐다는 데서 고조선과 고구려의 계승성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즉 고조선의 옛 땅을 고구려가 그대로 계승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법종 교수는 “이 문제는 앞으로 좀 더 면밀한 고고학적 고증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먼저 조법종 교수의 주장 중 하나는 고조선의 옛 땅에 생긴 한사군은 한꺼번에 설치된 것이 아니었다. ‘한서’ 오행지와 지리지는 기원전 108년에 낙랑군 등 3군을 두고 기원전 107년에 현토군을 설치했다고 기록했다. 왕검성이 함락되지 않은 상황에서 낙랑군이 생겨났고, 현토군은 함락 이후 설치된 것이다. 따라서 왕검성은 낙랑군이 아니라 오히려 현토군 자리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게 된다. 라고 하고 있다.
이 주장에 관하여 비슷한 주장에는 단국대학교 사학과 윤내현 교수의 “고조선의 도읍 위치와 그 이동”이라는 논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 서기전 195년에 이르러 서한으로부터 기자국으로 망명하여 온 위만이 기자의 후손인 준왕으로부터 정권을 빼앗아 위만조선을 건국하여 영토를 확장함에 따라 고조선의 영토는 대릉하 유역까지로 줄어들면서 고조선의 도읍은 위만 조선과 매우 가까이 있게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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