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케리디온
- 최초 등록일
- 2007.10.05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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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종교개혁사 선상집 제1장 엔키리디온
박건택교수의 과제 A41장입니다.?(에라스무스의 엔키리디온 군병 지침서)
에라스무스가 말하는 두가지 무기와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는 과연 종교개혁자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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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에라스무스의 엔키리디온에서는 그가 종교 개혁을 위하여 기독교인,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로써 지녀야 할 지침들을 제시하며, 적절한 비유법과 매우 논리적인 글로 독자들의 심경에 독특하고 강하게 설득하고 있다. 그것은 먼저 사람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함과 기독인 전쟁의 무기들에 대하여 언급해 준다. 이것이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핵심이다. 무기는 기도와 지식, 경건과 학문, 지성과 영성이다. 칼빈이 제네바 대학을 세울 때, 표어가 <학문과 경건>이었다. 그런데 개혁적 입장을 에라스무스가 이미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종교개혁을 준비하는 에라스무스의 엔 키리디온을 통해서 그 시대의 복음주의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거룩한 인성의 신비가운데서 파악된 그 시대의 복음주의 성격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과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의지, 그리스도가 지혜의 주인이시라는 것과, 기독교 철학의 그리스도는 유대의 거리를 다니시며 가르치신 비유의 그리스도 즉 산상수훈의 그리스도라는 점은 매우 신약적이다. 또 엔키리디온의 성경 인용이 구약 보다 신약에 많다는 것을 근거로 들 수 있다. 또 종교개혁자들이 그들의 개혁적 발견을 가져오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복음운동의 영향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이 복음운동의 결실들이었다. 왜냐하면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은 이런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을지언정 결코 교회 갱신의 장본인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칼빈이 교황을 향해서 적그리스도라고 말한 것은 그 당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날 20세기 관점에서 칼빈을 보면 그의 발언은 매우 새롭게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인문주의 자였던 에라스무스는 이미 종교 개혁을 준비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종교 개혁에 대한 중용적 입장은 그의 신학적 한계를 보여주었고, 점점 종교 개혁자들과의 사이가 멀어지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끝내 카톨릭의 한계를 벗어 날 수 없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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