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 60년대(전후 일본 경제)
- 최초 등록일
- 2007.07.18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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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의 전후 경제에 대한 리포트 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고도성장과 경제 계획 (소득배증계획)
62년, 65년 단기 불황
이자나기 경기
본문내용
-서론-
전후 10년의 혼란기를 보내고 일본경제는 뜻밖의 국제적 환경의 요인으로 인한 고도 성장기에 들어갔다. 국제 환경은 일본의 수출을 급격히 증가시키는 환경을 주어졌다.
지금으로써 10년 안에 국민소득을 2배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놓는 총리대신이 있다면 무책임하다 비난 받겠지만 당시 일본으로써는 그것이 가능하였으며 그것을 7년 만에 실질 국민소득을 이러한 목표치에 올려놓은 총리대신이 있었다. 이케다 하야토가 그 주인공이다. 이케다 내각의 장기 경제 계획을 통한 고도성장과 경제계획, 그리고 62년, 65년의 단기 불황과 이자나기경기를 통해 정책과 일본 경제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다.
-본론-
고도성장과 경제 계획 (소득배증계획)
이케다 내각은 발족하자마자 소득배증계획을 수상 자문기관인 경제심의회에 상정, 동년 12월에 ‘정책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회신을 얻어 경제심의회에서의 토의를 거쳐 확정되고 1961년도 예산안에 편성시켰다. 이렇게 해서 일본경제의 고성장을 지향하는 ‘국민소득배증계획’이 1960년 12월 각의의 결정에 따라 등장했다.
소득배증계획은 향후 10년간 국민소득을 두 배로 높인다는 것으로, 전년도 대비로 7.2%의 성장 폭을 정하는 안을 확정 시켰다. 그런데 이케다는 돌연 “실질적으로 10%이상의 성장력이 충분히 있으므로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7.2%안에는 절대 찬성할 수 없다.”며 목표수정을 들고 나섰다. 그리하여 예산안 정책비에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리하여 처음 3년간은 실질적으로 연 9%로 하자고 경제기획청을 설득했고, 이케다는 기획청의 담당자들도 이 철충안을 납득해주었다. 결국, 1961~1963년도는 연9%성장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케다 정권하에서 고도성장정책으로 산업생산 설비 확충과 산업기반 정비가 진행되었다는 공적을 빼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케다 성장정책으로 1961~63년은 설비투자 붐이 일어나 그로 인해 일시 국제수지 적자를 기록하게 되자 여기저기서 성장정책의 무효성을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여기저기서 성장 추진파는 그 당시 “먹고 마시는 데 외화를 깨고 있는 건 아니다. 외화가 설비투자와 재고투자로 그 모습을 바꾸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60년대 후반의 초대형 경기는 국내외의 수요증대에 대응할 만한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국내균형과 대외흑자를 불러올 수 있었다는 전후 맥락으로 본다면 역시 이케다 성장정책이 분명하게 결실을 맺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득증배계획이 효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 몇 가지를
참고 자료
전후 일본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