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계체천황에 관한 제설
- 최초 등록일
- 2007.06.14
- 최종 저작일
- 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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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학원 수업준비하면서 간단히 작성한 글입니다.
목차
1. 계체천황의 출신에 관한 설
2. 계체천황기에 보이는 중요기사
3. 계체천황릉의 위치
본문내용
1. 계체천황의 출신에 관한 설
◎ 계체천황(507~531)은 『일본서기』에 應神天皇의 5세손으로서 彦主人王의 아들이며 武烈天皇이 대를 이을 자녀가 없이 죽자 천황의 자리에 오른 것으로 되어 있음. 『일본서기』는 천황의 계보에 관하여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지만 계체천황에 대해서는 언급이 소략함.
- 이러한 이유등을 들어서 계체의 즉위는 새로운 왕조로 파악하는 견해가 있음.
◎ 계체천황의 즉위 이전 이름은 오호토왕(男大迹王)이며 아버지는 오오미(近江:시가현)지역의 수장이었던 히코우시(彦主人), 어머니는 에치젠(越前:후쿠이현)지역의 출신인 후리히메(振媛).
- 태어난 곳(시가현)이나 성장한 지역인(후쿠이현)은 모두 한반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있는곳. 계체천황의 아버지 무덤으로 추정되는 시가현 카모이나리야마(鴨稻荷山)고분에서는 백제와 관련한 장신구류가 출토. 후쿠이현 니혼마츠야마(二本松山)고분에서는 대가야 계통의 관 2점이 출토함.
◎ 계체천황의 출신에 대한 다양한 학설
① 계체천황은 계보상 응신천황의 5대손으로 되어있으나 계보적으로 신빙성이 부재한 것. 계체천황 이전에 정치적기반이 없던 응신천황이 율령제와 국가기구의 확립하였고 이것을 계승한 계체천황이 왕조의 정통성을 확보한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 水野祐(미즈노)
② 근강지역의 세력이었던 계체천황은 무열천황 사후에 정치적 혼란에서 응신천황의 5세손을 자칭하고 河內, 山城지역에 진출하여 그 지역세력과 결탁하여 황위에 오르지만 대화(大和)지역세력과의 마찰로 진출이 늦어진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 直木孝次郞(나오키)
◎계체천황의 경제적 기반
- 한반도계 이주민인 馬飼집단의 존재
■ 마사집단은 군마의 양성으로 군사력을 장악할 뿐만 아니라 교통수단으로서의 말을 확보한 점에서 활발한 경제활동이 가능함. 시토미야기타(蔀屋北)유적에서 집단적으로 말을 사육하던 흔적, 말을 운반하던 배(준구조선)이 출토됨.
- 바다를 통한 교역의 존재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