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꿈꾸는 개혁자 조광조
- 최초 등록일
- 2006.12.18
- 최종 저작일
- 2006.01
- 9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한국사 시간에 조광조에 대해서 조사하여서 썼던 리포트 입니다.
목차
1. 시작 하는 말
2. 조광조의 생애
가. 성장 배경
나. 성장기
다. 김굉필의 제자가 되다.
라. 청년기
마. 관직에 오르다.
3. 조광조의 개혁정책수행의 한계점
4.조광조의 정치 사상: 지치주의(至治主義)
5. 맺음말
본문내용
1. 시작 하는 말
조광조는 조선중기 중종조의 관료로 당시 타락했던 정치에서 벗어나 왕도정치를 꿈꾸던 이상적인 성향을 지닌 학자이자 지식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명성에 비해서 짧은 불과4년 남짓한 시간 개혁을 감행했던 그는 실제로 참고자료로 접하는 책마다 부제로 영원한 개혁의 순교자, 조선최고의 개혁가 등의 긍정적이고 칭찬일색의 표현들로 점철 돼 있었고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6~7년 전 내가 접했던 K모 방송사의 드라마에서도 그런 인물로 그려졌던 것 같다. 하지만 한 인물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개혁을 내세운 도덕가라 하더라도 꼭 긍정적인 측면만 있을 것인가? 인간인 이상 개혁의 추구과정에서 사감이 개입했을 수도 있고 주관이 강하다면 다소 아집이 들어간 단정적이고 편파적인 면도 있었을 것이다. 또 다소 성급하게 다가서는 점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조광조의 양면적인 측면을 당대의 상황과 조광조의 일생 그리고 그의 정치사상을 바탕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조광조의 생애
가. 성장 배경
조광조는 본관이 한양으로 그의 4대조 할아버지인 온(1347~1417)은 이성계의 외종질 로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이었고 증조할아버지인 육운 군대의 사령관 격인 정3품 당하관 어모장군을 지냈으며, 할아버지 충손은 세종24년 문과에 급제 평안도 도사를 거쳐, 병조좌랑, 성균관 사예(정4품 학술직)를 역임하다가 안평대군과의 친분으로 계유정난에 연루되었다는 협의를 받아 변방에 유배되었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아버지 원강은 사헌부 감찰과 찰방 등을 지냈고 어머니는 여흥 민 씨로 종6품을 지닌 민의의 딸이다. 또 우찬성까지 그의 숙부 원기는 사초를 직접 보겠다는 연산의 뜻을 거슬르고 유배를 갔을 정도로 강직했던 인물로 볼 때 조광조의 가문은 대대로 명문가이며 기골 있는 문관 집안임을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