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문-작은신의아이들
- 최초 등록일
- 2006.12.10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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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화 작은신의 아이들을 보고 쓴 영화 감상문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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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사라와 제임스를 보면서, 나는 어떤 것이 과연 진정한 사랑의 방법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아래 너무 많은 것을 간섭하고 때로는 자신의 영역안에 사랑하는 사람을 두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사랑한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자신과 닮아가기를 요구하고 자신역시 상대와 닮기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
제임스는 훌륭한 “교사” 였다. 그는 농학생들에게 말을 할 수 있게 하였고, 그들도 청인과 다르지 않고, 그들도 노래할 수 있음을 사회에 내보였다.(영화는 1980년대에 제작되었으므로, 그때의 상황에는 그것역시 대단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농학생들에게 음을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이 지금껏 경험해왔던 것과는 다른세계와 만나게 해주었고 또, 청인중심의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함께 통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그렇지만, 사라의 입장에서 볼 때, 제임스는 사라가 “사라”가 아니게 되는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극중 사라의 표현이다.)
우리는 때로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부모의 뜻대로 공부열심히 하고 어긋나지 않게 자라기를 바라고, 자식은 부모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요구하고, 남자는 여자에게 또 여자는 남자에게 사랑하기 때문에 알게, 또 모르게 바라는 것이 많게된다.
그러한것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아래 받아들여지지만, 제임스와 사라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닌 청인과 농인이라는 관점으로만 보았을 때, 청인인 제임스는 그녀와 대화하기 위해 수화를 사용하면서도 사라의 미래를 위해 사라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나중에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사라에게 말을하기를 요구하고, 사라를 자신의 영역안으로 이끌었다. 농인들의 모임에서 제임스가 느꼈던 감정은 아마 사라는 제임스와 함께 살면서 매일을 느끼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한 것을 그제야 깨달았기 때문에 제임스가 화가난 것은 아니었을까?
농인들이 말을 배워야만 세상의 다수에게 자신들을 표현하고 인정받을 수 있을것이라는 것은 어쩌면 청인들의 착각이나 편견자체 일지도 모른다. 구화주의자인 제임스는 사라와 함께한 농인들의 모임에서 수화역시 언어라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제임스에게 필요했던 것은 사라를 자신의 영역안에 두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그자체를 사랑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수화자체를 언어로 보는 것처럼 말이다.
사라의 수화는 진심이 담긴 화려한 수화였다. 그녀는 수화로 파도를 표현할 수 있었고, 그녀의 감정은 수화안에 모두 담겨져 있었다. 마치 우리의 말속에 감정이 실리는 것처럼.
참고 자료
영화-작은 신의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