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일본은 있다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6.12.03
- 최종 저작일
- 2006.11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
목차
<1장 문명개화의 열풍>
<2장 일본,일본인의 초상>
<3장 한국과 일본, 그 애증의 실체>
<4장 일본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본문내용
<1장 문명개화의 열풍>
일본인들은 “각자가 알맞은 자기 자리에 위치한다”는 운명론적 인생관을 갖고 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팔자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인에 대한 이해는 그 묘한 운명론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하지만 그들의 운명론이 무조건적인 현실 적응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들은 타고난 팔자대로 살아가되 한편으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국제사회에 있어서도 “자리매김“에 예민했는데, 1853년 페리제독 내항이래 각 분야에서 서양화를 눈물겨운 정성으로 추진하였다. 일본은 서양이 자신의 나라를 문명국으로 인정해 주기를 간절히 원했고 인정받기 위해 기상천외한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는데 소위 로쿠메이캉의 무도회로 상징되는 유럽화 정책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1881년 착공하여 1884년 완공된 르네상스 양식의 하얀 2층 건물이 바로 한 시대를 풍미하던 국제사교클럽 `로쿠메이캉`이다. 개관 배경에는 일본인이 구미 여러 나라와 같은 수준의 생활을 하고 있음을 내외에 과시하는 한편 이미 근대국가로서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서구와 체결한 불평등 조약으로 더 이상 참을 수 없음을 대내외적으로 호소하고 조약개정을 적극 추진할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1884년 11월 28일 낙성식날 예쁜 일본 미인들이 미국, 영국, 독일인과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일본에도 구미 사교계의 여성 못지않은 춤꾼이 있다는 것을 한껏 과시했다. 로쿠메이캉은 탈아 입구를 위한 일본의 처절하고도 진지한 염원이 어린 웃지 못 할 막간극이었다. 그러나 그 실험은 비극이건 희극이건 간에 서구화 추진의 관점에서 볼 때는 성공적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원리 원칙에 집착하지 않고 실용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일본인들의 근대화로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고 보는 것이 적합한 판단일 것이다. 아무튼 남다른 발전을 이루게 되는 그들의 이면에는 서구화, 국제화에 대한 그런 열정적 집착이 있었던 것이다. 천황은 일본의 역사 속에서 늘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그 상징으로서 의미를 더 극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권력자들은 일반 서민들과 천황의 접촉을 철저히 막았다. 천황존중의 가치를 내걸고 명치유신의 원로들은 신 국가 건설의 전략적 목적을 위해서 수동적, 명목적으로나마 천황을 권력의 주체로 부상시켰고 천황의 존재를 백성들에게 인식케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에 따라 천황을 외부에 드러내는 일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천황의 시각화, 권력의 시각화를 위해 천황의 초상화를 사진으로 만들어 배포했다. 천황제 국가 요람기에 배포된 이 천황 사진은 그야말로 신주단지 대우를 받았다. 목조로 되어있는 관공서 건물에 화재가 일어났을 때는 천황사진을 구출하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드는 충군애국의 천황 신민이 부지기수였다.
참고 자료
(책)일본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