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질랜드 토착민 마오리족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06.11.01
- 최종 저작일
-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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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뉴질랜드의 토착민인 마오리족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목차
1. 마오리족의 어제와 오늘
2. 마오리족의 문화
(1) 의식주
(2) 공연
(3) 문신
3. 마치며
4. 덧붙이며
본문내용
마오리족의 어제와 오늘
뉴질랜드의 토착민을 마오리족이라고 한다. 뉴질랜드가 서양인에게 발견되기 전까지 그 곳에서 생활하던 민족인 마오리족은 세계의 원주민들이 그러하듯 독특한 문화를 계승하고 지켜왔다.
마오리족은 약 1,000년 전에 새로운 땅을 찾아 별을 따라서 뉴질랜드에 도착했다. 마오리들은 그곳 뉴질랜드를 자신을 언어로 아오테아로아(Aotearoa), 즉 ‘길고 하얀 구름의 나라’라고 불렀다고 한다. 18세기 말에 유럽인들이 오기 전까지 마오리족은 석기시대의 문화만을 가지고 생활하며 목공예, 옥장신구 등의 예술을 발전시켰다. 그들에겐 따로 문자가 없었기에 특히 구전문학과 웅변이 발달해 있었다. 주뉴질랜드 대사관(http://www.mofat.go.kr/ek/ek_a001/ek_nznz/ek_03.jsp) 참고
이 무렵의 마오리는 대부분 북도(北島)의 북반도(北半島)에 위치하여 농경생활을 하고 있었고, 대가족 단위의 혈연 친족집단을 이루고 살았다. 또한, 귀족․평민․노예로 나누어지는 뚜렷한 신분적 계층분화로 분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NeWzEaLaNd에 대하여 (http://cafe.naver.com/skguswllover) 참고
이렇게 마오리족은 고립된 환경 속에서 독자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다.
유럽인이 뉴질랜드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은 1642년의 일이다. 네덜란드사람이었던 아벨 타스만(Abel Tasman)이 그 곳을 발견한 후 네덜란드의 지리학자가 네덜란드 지명 Zealand에 New를 붙여서 뉴질랜드라는 이름은 지금도 통용되고 있다. 유럽인의 본격적인 이주는 1769년 영국인 선장 제임스 쿡(James Cook)의 세 차례에 걸친 항해가 발단이 되었다. 쿡 선장은 항해 끝에 해안선을 정밀 조사하고 그 이후부터 영국과의 교역 및 이주가 시작되었다. 주뉴질랜드 대사관(http://www.mofat.go.kr/ek/ek_a001/ek_nznz/ek_03.jsp) 참고
유럽인이 하나 둘 뉴질랜드로 이주해 오면서 마오리족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와이탕이(Waitangi) 조약과 그로 인해 발발된 마오리 전쟁은 마오리족의 인구를 급속히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뉴질랜드의 ‘와이탕이’라는 지역에서 체결된 와이탕이 조약은 마오리족과 뉴질랜드 사이의 관계를 법률적으로 규정해주었다. 뉴질랜드의 재화는 마오리족이 갖지만 그들의 통치권은 영국인에게 양도한다는 내용을 이루고 있는 이 조약은, 시간이 흘러 영어와 마오리어로 된 양 문건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면서 분쟁을 야기했다. 이에 마오리족은 1860년 자치정부를 세웠고, 이러한 갈등은 1860년에서 5년간 지속된 마오리 전쟁으로 표출되었다. 마오리족과 영국인의 전면전의 결과로 마오리족은 토지를 몰수당했다. 이후, 뉴질랜드에서의 유럽인의 정착과 영향력은 갈수록 커졌고 자연히 마오리족의 설 곳은 줄어들어갔다
참고 자료
http://www.twinkiwis.com/infhis306.htm
http://www.auctiontour.com/region/south_pacific/newsealand/info_history.htm
http://www.mofat.go.kr/ek/ek_a001/ek_nznz/ek_03.jsp
http://cafe.naver.com/skguswllover
KBS 2TV 특집다큐 ‘모험의 땅 뉴질랜드 - 4 마오리족의 르네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