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순신의 기적, 그 승리요인에 관한 小考
- 최초 등록일
- 2006.06.05
- 최종 저작일
- 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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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흔히 이순신과 임진왜란에 대해 잘 모르고, 이순신을 그저 "해전의 신"이라 하고 기껏해야 학익진, 한산도대첩 등으로 지칭된 것에 대해 알려드리기 위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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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이순신 장군. 그는 흔히 민족의 영웅을 넘어 "성웅"이라고까지 칭송받으며 일본군을 무찌른 그의 행적은 단순한 한 장군의 일대기나 전쟁이 아닌 인간을 넘어선 "신"의 행적인 양 알려져 있다. 그가 부족한 전력과 미흡한 지원 속에서 얻은 23전 23승 무패라는 기록은 분명 대단하고, 아무도 그에 닿기 힘든 위대한 전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가 어떻게 싸워 어떻게 이겼고, 어떤 요인으로 그가 이길 수 있었고 그런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실로 미흡하기 짝이 없다. 그저 학익진이란 말 하나와 한산도대첩이라는 전투이름 하나, 원균이 나쁜 사람이라고 뿌리박힌 인식, 거북선, 그리고 이순신은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 이 정도가 사람들이 임진왜란이라는 네 글자에 대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이다. 필자는 이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임진왜란의 수많은 해전, 그리고 이순신이 이길 수 있었던 요인들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분명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병력은 분명 일본군에 비해 적었고, 국가적 지원도 일본군에 비해 형편없었으며, 일본군의 주 병력들은 전투를 통해 단련된 병사들이었다. 허나 이런 것들을 뒤집을만한 힘이 조선에는 분명히 있었다. 아니 조선이 아니라 이순신 수군에 있었다고 해야 옳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것들을 알아보려 한다.
우선 첫 번째로 봐야 할 것은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의 차이점이다. 일본군의 주 병력들은 전투를 통해 단련되었고, 조선군의 병력들은 훈련을 아무리 해도 그 전투경험에 따라갈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경험상태를 따지자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실제 해전에서 그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일본 내부에서의 전쟁과 일본 밖에서의 전쟁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군들이 비록 전투에서 단련되었다고 하나 그들의 싸움은 사무라이들의 쟁탈전, 거의 모두가 육지전이었고 그 경험들이 해전에서는 큰 영향을 주기 힘들었다. 육박전에서는 조총보다는 차라리 칼을 쓰기에 그들의 해전시 전투능력은 경험으로 메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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