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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세사]한국근세사 기말고사 출제자료

*병*
최초 등록일
2006.04.17
최종 저작일
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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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근세사 과목의 출제문제와 자료입니다.

목차

1. 조선이라는 국호의 배경
2. 조선후기를 근대사회로 보는 주장/ 문제점 지적
3. 조선시대의 군사제도

본문내용

1. 조선이라는 국호의 배경
국호를 `조선`으로 정하게 된 배경 이성계는 왕위에 오른 직후 국정에 대한 강령 17개조를 발표하는 등 건국 후의 제반 조처를 강구하였는데 이중에 가장 시급한 현안이 국호를 정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성계는 중추원사 조림을 명에 파견하여 신정권의 수립을 알리는 한편 국호를 개정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명으로부터 국호 개정이 승인되자 이성계는 원로들과 백관을 한자리에 모아 국호를 의논하도록 했으며, 그 결과 `조선`과 `화령`이라는 두 명칭이 정해졌다. 조선은 단군조선, 기자조선 등 역사적인 맥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화령은 이성계의 출생지라는 이유로 채택된 듯하다. 이 화령이라는 지명은 원래 화주목이었는데 공민왕 시대에 화령부로 개칭되었다가, 국호를 조선으로 확정한 1393년에는 이성계의 외조부 출생지인 영흥진의 이름을 따서 `영원히 흥한다`는 뜻인 영흥으로 다시 바뀌었다.

이처럼 `화령`과 `조선`이라는 두 이름이 결정되자 이성계는 1392년 11월에 문관학사 한상질을 다시 명나라에 파견하여 조선과 화령 둘 중에서 하나를 국호를 채택해 줄 것을 청하였다. 이때 주문사로 중국에 파견된 한상질은 수양대군을 왕위에 올려 공신이 된 한명회의 조부였다. 그는 국호 개정의 논의가 있자 주문사를 자청하여 1392년 7월 명나라로 떠나 이듬해 2월에 `조선`이라는 국호를 결정받고 돌아왔다.

조선이라는 국호의 결정과 관련하여 조선과 명의 입장은 사뭇 달랐다. 조선측에서는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의 문화와 전통을 동시에 계승한다는 의도였지만, 명은 기자조선을 의식하고 조선이라는 국호에 쾌히 동의했던 것이다. 즉 『논어』에 등장하는 은나라의 현인 기자가 조선으로 망명하여 백성을 교화시켰으며, 이에 주나라가 기자를 조선의 제후에 봉하였다는 『한서지리지』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명의 주원장은 조선이라는 이름이 중국의 제후국임을 뜻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처럼 조선이라는 국호는 민족주의적인 역사관과 사대주의적인 가치관이 혼재되어 있는 이름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
*병*
판매자 유형Bronze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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