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사]이집트 미이라와 매장의식
- 최초 등록일
- 2005.07.02
- 최종 저작일
- 2004.10
- 1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고대 이집트의 미이라와 죽음의 신들에
대해 정리한 레포트입니다.. 그림도 넣고 각주도
많이 넣어서 참고 하시기 좋으니까 많이 이용해
주세요 ^^
목차
서론
(이집트에 있어서 죽음의 의미란 무엇인가?)
본론
1.<죽음의 의미>
2.<이집트의 죽음과 관련된 신들>
3.<매장 의식>
결론
본문내용
죽은 자의 이름은 죽는 순간부터 ‘오시리스’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죽은자를 ‘고(故)X’로 부르는 것처럼 ‘오시리스X'로 불렀다. 방부 처리 의식은 대개 70일 정도가 소요되는 아주 복잡한 과정이었다. 죽은 자가 오시리스의 열정을 함께 하는 과정은 오시리스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모습들로 생각되었다. 죽은 자의 시신은 집에서 텐트 형태로 된 특수 작업장으로 옮겼는데, 그 작업장을 ‘좋은 집’ 이나 ‘정화의 장소’ 또는 ‘금의 집’이라고 불렀다. 먼저 시신을 나일 강물로 깨끗이 씻은 다음에 왼쪽 옆구리를 절개해서 간과 폐, 위, 창자를 제거했다. 이 장기들을 카노푸스단지라고 하는 네 개의 용기에 넣은 후, 이 장기들이 있던 부위를 향신료와 송진으로 채웠다. 시체를 보존하기 위한 방부 처리 방법은 3왕조말(B.C2575년경)에 방부 처리사들은 시체의 내장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이 사실은 들어낸 내장을 담아두는 돌 항아리인 카노푸스 단지의 존재를 통해 확인되었다. 방부처리사는 소다석(인체나 동물의 표피조직에 저절로 생기는 탄산나트륨과 염화나트륨의 결합체)이 놀라운 탈수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4왕조의 첫 번째 왕이며 케오프스의 아버지인 스네푸르의 아내 헤테페레스는 네 개의 방으로 나누어진 설화석고 상자 속에서 소다석에 코팅된 채로 발견 되었다. 이러한 시체를 건조하게 만들고 내장을 들어내는 것은 중왕국(B.C 2040~1786)때 널리 퍼지면서 한결 개선되었다. 이시기에 제작된 수많은 미라들은 파손되지 않고 현재 까지 보존되어 있다. 멘투호테프3세(11왕조)시대의 고관이었던 ‘와’의 미라는 엄청난 양의 붕대로 친친 감싸여 있는데 그 보존상태가 많이 양호한채로 존재하고 있다.
참고 자료
베로니카 이온스 저/ 심재훈 옮김, 『이집트 신화』, 범우사, 2003.
멜리사 애플게이트 저/ 최영훈 옮김, 『벽화로 보는 이집트 신화』, 해바라기, 2001
프랑스아즈 뒤낭 저/ 이종인 옮김, 『미이라 영원으로의 여행』, 시공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