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공무도하가
- 최초 등록일
- 2005.04.21
- 최종 저작일
- 20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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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公無渡河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임이 그예 물을 건너시네,
墮河而死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當奈公何 임이여, 이 일을 어찌할꼬.
공무도하가는 고조선 시대로 추정되는 고대가요로서 4언 4구의 한역시가의 갈래로 별칭으로는 악곡의 명칭을 빌어 공후인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임을 여읜 슬픔을 백수 광부의 처 혹은 곽리자고의 아내 여옥이 지었다고 전하며 <황조가>와 함께 최고(最古)의 서정가요이자 원시·고대 문학의 집단 가요에서 개인적 서정 가요로 넘어가는 시기의 작품으로서 의의를 가지고 한치윤의 [해동역사]에 한역시 형태로 전한다.
선학들의 공무도하가에 대한 연구는 오랜 시간에 걸쳐 방대한 양과 여러 가지 형태로 이루어져 왔는데 이 중에도 학자들에 따라 여러 가지 견해들로 나타난다.
우선 공무도하가의 배경설화에 대한 많은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면,
조선의 뱃사공 곽리자고(곽里子高)가 아침 일찍 일어나 배를 손질하고 있었는데 그 때 머리가 허옇게 센 미치광이(백수광부-白首狂夫) 한 사람이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술병을 쥐고는 어지러이 흐르는 강물을 건너고 있었다. 그 뒤를 그의 아내가 따르며 말렸으나 미치지 못해 그 미치광이는 끝내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이에 그의 아내는 공후(공후)를 뜯으면서 공무도하(公無渡河)의 노래를 지었는데, 그 목소리가 아주 슬펐다. 노래가 끝나자 그의 아내는 스스로 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이러한 광경을 처음부터 목격한 곽리자고는 돌아와 자기 아내 여옥(麗玉)에게 이야기하면서 노래를 들려주었다. 여옥은 슬퍼 공후를 뜯으면서 그 노래를 불렀다. 듣는 사람들 중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옥은 이 노래를 이웃에 사는 여용(麗容)에게 전하였다. 이 노래를 이름하여 '공후인(공후引)'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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