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독후감
- 최초 등록일
- 2005.03.26
- 최종 저작일
- 2003.09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이광수 <무정> 독후감 자료입니다.
국어교육과 현대소설론 소설 시간에 작성한 레포트입니다. 좋은 점수를 받았던 자료니까 가져가서 바로 인용하셔도 좋을 겁니다. ^^
목차
1. 작가조사
2. 줄거리요약
3. 인상깊었던 장면
4. 감상 및 비평
본문내용
1. 작가 조사
작가 이광수(李光洙)는 1892년 평북에서 태어났다. 1902년 일찍이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고 이듬해에 동학에 입도 하여 서기로 활동하기도 했다.
1904년 상경하였고 다음해인 1905년에 일진회(천도교)의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문일평 등과 함께 공부하며 소년회를 조직하고 회람지 『소년』을 발행하였고 시,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10년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여 정주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다음해 중국 상해로 건너가 1914년 미국에서 발간되던 『신한민보』의 주필로 내정되어 미국에 가려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귀국하였다.
1915년 김성수의 알선으로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하였다. 『매일신보』로부터 신년 소설 청탁을 받고 구고 중의 박영채에 관한 것을 정리하여 1917년 1월부터 장편소설 『무정』을 연재하여 한국 소설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등 신문학의 개척자 구실을 했다.
계속해서 단편 「소년의 비애」, 「개척자」, 「어린 벗에게」를 잡지 『청춘』에 발표하였고 초창기 신문학의 실천적이고 선구적인 개척자로 최남선과 함께 언문일치의 현대적인 신문장 운동 등 일련의 신문학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동경 유학생의 2·8독립선언서를 작성한 후 상해로 망명하여 안창호를 도우면서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사장을 역임했다. 그 해 『창조』의 동인이 되었고 다음해 귀국하여 잡지 『개벽』에 논문 「민족개조론」을 발표하고, 1923년 『동아일보』 객원으로 『재생』, 『마의태자』, 『단종애사』, 『흙』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하였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안창호 등과 함께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반년 후 병보석되었다. 1939년 조선문인협회 회장이 되고, 다음해 카야마(香山光郞)로 창씨개명 하면서 일제의 군국주의 정책에 동조하여 해방 후 많은 비난을 받았다. 1949년 반민법에 의해 구속되었다가 병보석되고, 1950년 『태양신문』에 장편 『서울』을 연재하다가 6·25 전쟁이 반발, 7월 12일 납북되어 사망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