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문]경복궁 답사기
- 최초 등록일
- 2005.01.04
- 최종 저작일
- 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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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복궁 답사기 입니다
목차
◆ 5월 24일 ◆
◆ 5월 25일 ◆
본문내용
해방 이후에도 광화문은 한국전쟁 폭격으로 석축만 남게되고 광화문이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된 것은 1968년 박정희 정권에 이르러서이다. 파괴된 문루를 다시 짓고 광화문을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새로 재건한 광화문은 목조가 아닌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졌으며, 재건 당시 광화문의 축을 경복궁의 중심 축에 맞춘 것이 아니라 당시 중앙청으로 쓰이던 구 조선총독부청사의 축에 맞추어, 그 결과 3.5도 가량이 경복궁의 축과 어긋나게 틀어지고 말았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 즉 광화문 - 근정전 - 사정전 - 강녕전 - 교태전은 일직선상에 놓여 관악산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일제는 총독부 청사의 방향을 남산에 맞추었는데 일제는 남산에 있던 단군을 비롯한 여러 신들을 모신 국사당을 헐어 내고 일본의 국가 조상신을 모신 조선 신궁을 세워 결국 경복궁도 그 곳을 바라보도록 만든 것이다.)
광화문이 이렇게 많은 수난을 겪었다는 것은 그 곳에 가 있는 동안에도 알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특히, 우리 정부가 해방 후에 취한 조치들은 적지 않은 실망을 안겨다 주었다.
광화문 안쪽으로 들어서자 흥례문(興禮門)이보였다. 지금의 흥례문은 일제 때 훼손되었던 것을 재건된 모습이다.
흥례문은 처마선과 산줄기가 잘 어우러져 있다는 사실을 어제 조사로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 모습을 담기위해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 조금 어설프게 나왔지만 자연 친화적인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흥례문을 들어가자 바로 앞에 돌로 된 다리가 보였다. 바로 영제교(永濟橋)다. 영제교 밑에는 물이 흐르는 길이 있는데 풍수 지리적으로 경복궁 뒤쪽의 산과 더불어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 하천의 역할을 하도록 인공적으로 만든 곳이다. 또한 이 다리는 왕과 외부의 공간을 구분한다는 의미도 갖고 있다.
영제교를 지나 근정문(勤政門)을 지나면 경복궁에서도 가장 중심이 된다는 근정전(勤政殿)이 나온다. 그러나 아쉽게도 근정전은 보수공사 중여서 교수님이 사전에 미리 준비해오라고 하신 자료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근정전 월대에 올라가 조선시대의 왕의 기분을 느끼고 싶었던 기대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하는 수 없이 공사장 앞에 진열된 사진만으로 만족해야 했던 나는 쌍룡사진을 보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근정전은 문무 백관들의 조하(朝賀)를 받거나 왕위 즉위식, 외국사신 접견 같은 중요한 임무를 맡아보던 곳으로 현재 국보 223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료에 의하면 경복궁은 화재 등의 사고가 많이 났던 곳이기 때문에 화재를 막아준다는 상징으로 드므에 물을 넣었다고 한다. 정은 아직 정확한 쓰임새를 모르지만 근정전 내부의 병풍과 함께 왕권을 상징하는 수단으로 생김새가 휴지통 같아서 많은 관광객들이 이 곳에 쓰레기를 버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참고 자료
http://my.dreamwiz.com/nazalle/ (경복궁 관련 개인 홈페이지)
http://myhome.naver.com/iskylove/(‘경복궁에서의 하루’)
http://www.palace.or.kr/(우리 궁궐 지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