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사료]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23 온조왕대 사료분석 및 고찰
- 최초 등록일
- 2004.12.28
- 최종 저작일
- 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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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23 온조왕대에 관한 사료를 분석한 글입니다. 온조왕대의 내용이 빠짐없이 들어가있고, 한자원문과 함께 사료의 해석 및 당시의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사료내용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글입니다. 교수님과 함께한 내용이니 많이 참고하세요^^
목차
<머릿말>
<본론>
(1)대외관계기사(말갈,낙랑,마한과의 전쟁및 수호)
(2)기이한현상 관련기사
- 자연현상
- 왕궁의 현상
(3)지명관계기사
(4)왕의 행위와 관련기사(순무, 수렵 등)
-왕의 제향적 기능
-왕의 순무, 출렵기능
(5)정치. 행정관련기사
(6)초기백제의 성립배경
<결론>
본문내용
<본론>
(1)대외관계기사 (전쟁, 수호, 외교 등)
○ 二年, 春正月, 王謂群臣曰, 靺鞨連我北境, 其人勇而多詐, 宜繕兵積穀, 爲拒守之
2년 정월에 왕이 群臣(군신)에게 이르기를 "靺鞨(말갈)은 우리 北境(북경)에 連接(연접)하여 있고, 人性(인성)이 용감하고 多詐(다사)하니 마땅히 兵器(병기)를 수선하고 양곡을 저축하여 防守(방수)할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하였다.
- 말갈이 백제의 북경에서 위협한다는 내용으로 보아 초기 백제의 북쪽방향에 말갈이 위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춘정월’이라는 시기에 쓰여진 사료이기 때문에 왕이 신하들에게 언급한 내용은 매 년의 첫 시간에 국가행정에 관한 장기적이고 많은 계획을 세울 때,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왕이 정초에 신하들과 함께 열은 정무회의가 조회와 같은 상황에서 지시한 사항일 가능성이 크다.
○ 三年, 秋九月, 靺鞨侵北境, 王帥勁兵, 急擊大敗之, 賊生還者十一二,
3년 9월에 靺鞨[말갈:東濊(동예)의 誤稱(오칭)]이 北境(북경)을 침범하므로, 왕이 强兵(강병)을 거느리고 급히 쳐서 이를 大破(대파)하였는데 賊(적)의 生還(생환)한 자가 열에 한둘(뿐)이었다.
-북경에 연접해있던 말갈이 드디어 백제에 침범하였고, 왕은 군대와 함께 이들을 대패시켰다. 이로보아서 백제는 국가건립이후 극 초기 상태였으나 ‘강병’이라고 표현되는 군대조직이 존재하였고, 이 조직 안에서도 계급에 따라 차등신분 또는 정예부대의 개념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10 中 8~9명이 사망하거나 포로로 붙잡히고 1~2명만이 생존하였다는 것은 구체적인 숫자의 표현으로서 전쟁의 상황과 백제의 공격상태, 강한 군사력, 대패한 말갈의 상황 등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즉, 고대사 전쟁 관련기사에서 포로와 전사자 등의 산술적인 퍼센트의 표기는 전쟁의 대승일패 혹은 전재의 격한 상황을 추측해 보기에 충분하다. 또, 적이 북경에 침범하자마자 장군의 지휘가 아닌 왕의 직접적인 인솔을 통해 바로 대항한 왕의 태도로 보아서 공격적이고 진취적인 초기왕의 성격까지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