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울산유적지를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4.11.23
- 최종 저작일
- 2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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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적지 다녀온 기행문입니다.
목차
Ⅰ. 출발하기 전에 ...
Ⅱ. 유적지를 둘러보면서 ...
1. 박제상(朴堤上) 유적지 (신라의 충신 박제상)
2. 반구대 암각화 (선사시대의 생활모습 반구대 암각화)
3. 천전리각석 (선사와 고대의 만남 천전리각석)
4. 망해사(望海寺) (용왕의 아들 처용 )
Ⅲ. 답사를 마치며 ...
본문내용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울주군 두동면에 위치한 박제상(朴堤上) 유적지였다. 유적지 본래 이름은 ‘치산서원(致山書院)’이며 울산시 기념물 1호로 지정되어 있었다. 서원은 망부석이 올려다 보이는 한적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골짜기여서 그런지 교통이 많이 불편해서 찾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유적지의 첫 인상은 깔끔하다는 것이었다. 관광자원으로 무분별하게 파헤쳐져 있지 않고 말 그대로 자연에 동화되어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서원 주위는 산으로 병풍처럼 둘러 쌓여있고, 서원이 있는 자리만 평지로 자리 잡고 있었다.
서원 앞쪽에 붉은 기둥의 문이 있고 그 문을 통과하면 다시 정문에 해당하는 대문이 나왔다. 서원 내부에는 박제상에 관련된 글귀와 사진들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어 이곳에 얽힌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었다.
본래 이곳은 신라 충신 박제상과 그의 부인을 기리기 위해 세웠던 사당의 터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박제상은 신라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후예이다. 눌지왕(訥祗王)이 임금이 된 후,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 있던 두 동생을 몹시 보고 싶어 했다. 박제상은 임금의 명령을 받아, 먼저 고구려로 가서 뛰어난 언변으로 고구려왕을 설득하여 복호(卜好)를 구출해내었다. 그리고 다시 자청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미사흔(未斯欣)을 구출해 귀국시켰으나, 일이 탄로나 자신은 붙잡혔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