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국가들 가운데 오로지 베네치아에서만 반란이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고 대체로 당시에 일반적이었던 당파 싸움의 폐해도 별로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베네치아는 정치적으로 비잔틴 쪽에 속하면서 지리적으로는 신성로마제국에 가깝다고 하는 특수한 처지에 있었다. 베네치아는 특유의 외교력과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 최초 등록일
- 2024.02.29
- 최종 저작일
- 2024.02
- 58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500원
소개글
"이탈리아의 국가들 가운데 오로지 베네치아에서만 반란이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고 대체로 당시에 일반적이었던 당파 싸움의 폐해도 별로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베네치아는 정치적으로 비잔틴 쪽에 속하면서 지리적으로는 신성로마제국에 가깝다고 하는 특수한 처지에 있었다. 베네치아는 특유의 외교력과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1. 베네치아의 역사와 지형
1-1. 역사
1) 베네치아 공화국의 탄생과 발전
"태초에 장사가 있었나니." ..
베네치아공화국의 많은 부분을 대표하는 한 마디 이다.
로마제국의 붕괴 후 훈족이라는 야만족이 유럽으로 침입, 이탈리아에도 쳐들어 왔을 때 그 난을 피하여 바다 가까운 개펄로 옮겨 사람이 살 수 있는 수상마을 베네치아를 건설하고 다시 그곳을 발판으로 바다로 진출한다. 앞은 바다이고 뒤는 야만족 내습의 위협이 끊이지 않는 한계적 역경에서 베네치아인들은 불굴의 의지와 합리적 정신으로 바다의 일부인 개펄지대의 바닷물과 개펄을 잘 관리하여 안전하고도 건강하며 온갖 산업활동과 공공활동도 가능한 수상도시를 건설한다. 그 다음 베네치아인들은 그 안전하고 건강한 수상근거지로부터 바다로 나아가야 했다. 여기서 배가 사활의 중요성을 갖게 되는데 비교적 값싸고 손쉽게 건조할 수 있는 기술과 그것을 운용하는 제도를 만들어 낸 것이 베네치아인들이 성공을 거두는 기본적 발판이 된다.
안전한 수상 근거지의 건설과 갤리선이라는 배와 항해술의 개발. 이 두 가지 성공을 기본조건으로 하여 바다의 도시 베네치아가 '지중해의 여왕'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무역입국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이것을 대성공으로 이끈 것은 그들의 뛰어난 상업조직, 노련하고 기민하기 이를 데 없는 외교 ,그리고 겹겹이 안전장치가 둘러쳐진 공화제 정치제도의 결합된 힘이었다. 실로 놀랍도록 잘 조직된 그들의 상업활동과 정치제도는 특히 중요한데 오늘날 위기에 빠져있는 우리나라로서는 개혁의 큰 방향을 참고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베네치아의 외교는 그 착실하고 현실주의적인 노선과 기민한 활동으로 동시대인과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는데 우리는 베네치아가 주요 교역대상국에 외교관을 상주시킨 세계 최초의 나라라는 사실과 그들 외교관이 본국정부에 보내온 보고는 당시의 제1급 정보로 보관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즉 그들의 이러한 치밀함이 있었기에 당시 제일의 교역국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