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군 개관 대리석불입상 려유 조광조 적허지) 쌍봉사 운주사
- 최초 등록일
- 2024.02.22
- 최종 저작일
- 20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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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화순군 개관
Ⅱ. 대리석불입상
Ⅲ. 조광조 적려유허지(謫廬遺墟卑)
Ⅳ. 쌍봉사(雙峰寺)
Ⅴ. 운주사(雲住寺)
본문내용
구석기시대 주거유적이 남면 사수리 대전마을 주암댐 수몰지구에서 발견되었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유물·유적으로는 1,180여 기의 고인돌과 도곡면 대곡리에서 세형동검·팔두령(八頭鈴)·동경(국보 제143호) 등의 청동제품이 출토되었으며, 도암면 대초리에서 마제석촉이 출토되었다. 군의 전 지역에서 발견되는 고인돌군은 이 지역에 일찍 정치세력이 출현하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마한의 여러 소국 가운데 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이 이 지역에 비정되지만 확실하지 않다. 백제의 영역에 들어간 뒤 잉리아현(仍利阿縣)·이릉부리군(爾陵夫里郡)·두부지현(豆夫只縣) 등이 설치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이릉부리군은 능성군(陵城郡 또는 綾城郡)으로, 잉리아현은 여미현(汝湄縣)으로 고쳐져 능성군의 영현이 되었다. 두부지현은 동복현(同福縣)으로 고쳐져 곡성군(谷城郡)의 영현이 되었다. 868년(경문왕 8) 무렵 쌍봉사(雙峰寺)에 철감선사(澈鑒禪師)의 탑과 탑비 등이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이곳이 선종의 중심지 가운데 한 곳이었던 것 같다.
940년 여미현은 화순현(和順縣)으로 개칭되어 나주목의 속현이 되었다가 뒤에 능성현에 소속되었다. 1018년에 동복현은 보성군의 속현이 되었고 능성군은 처음 나주목에 영속되었다가 1143년(인종 21) 현령이 파견되어 능성현이 되었다. 1390년(공양왕 2)화순현과 동복현에 감무가 파견되었고 화순감무는 남평감무(南平監務)를 겸임하였다. 고려 후기에 운주사의 불탑과 불상이 집중적으로 건립되었다.
1394년(태조 3) 남평과 화순이 분리되었고 화순감무가 동복감무를 겸하게 되었다. 1405년(태종 5) 동복현이 폐지되어 화순현에 합쳐졌으며 1407년 복순현(福順縣)으로 개칭되었다. 1416년 다시 동복현이 분리, 독립되었고 화순현은 능성현에 합속되어 순성현(順城縣)으로 개칭되었다가 1418년 각각 분리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