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사학 논고를 리뷰형식으로 작성(위대한 정사(正史)의 효시, 사마천의 『사기)
- 최초 등록일
- 2023.09.01
- 최종 저작일
- 20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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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과목명: 동양사학
주제: 동양사학 논고를 리뷰형식으로 작성
목차
1. 사마천이 『사기』를 집필한 목적
2. 단순한 역사서를 넘은 인간학의 효시
본문내용
사마천이 『사기』를 집필한 목적에 대해 학자들은 그의 불굴의 의지 혹은 지극한 효심이라고 보거나, 호사가들은 사마천이 겪은 비극적 사건인‘이릉의 화’에서 그 목적을 찾았다. 하지만 논고의 저자는 사마천이 『사기』를 집필할 수 있었던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이유를 1980년대 발견된 한 죽간에서 찾았다.
먼저, 기존의 학자들이 사마천의 『사기』 집필 목적을 그의 불굴의 의지나 지극한 효심에서 찾았던 데는 사마천이『태사공자서』에서 언급한 말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사마천이 『사기』 편찬의 마지막 목적으로 부친의 유업을 이어 사마씨 일가의 말을 이루고자 함을 천명하였기 때문이다. 반면 호사가들이 ‘이릉의 화’를 언급한 이유는 사마천이 이 사건에 연루되어 궁형이라는 형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릉의 화’ 란 진시황 사후, 격동의 진한교체시기에 일어난 사건으로, 구체적으로는 흉노와 한 제국이 긴장적 관계에 놓였던 시기에 일어났다. 한은 진시황 사후 흉노로부터 지속적인 위협을 받아왔는데, 기원전 202년 두 나라가 국운과 자존심을 걸고 충돌했으나, 결과는 대패였다. 이 때문에 유방이 구걸하다시피 화약을 맺고 장안으로 복귀하였고, 이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한은 흉노에게 전전긍긍하며 수세국면에 머물렀다. 다음 집권한 한 무제는 월지와의 동맹외교를 통해 흉노를 견제하는 대외정책을 펼쳤는데, 임무를 맡고 떠난 장건이 비록 월지와 동맹외교는 맺지 못하였지만, 성공적으로 서역 원정을 마치고 왔고, 동시에 한은 흉노에 대해 전면적인 군사원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은 흉노를 와해시키고, 농경정주 지역의 제국에서 중국 역사상 최초로 사막과 초원까지 장악하는 제국 팽창과 영광의 시기를 맞이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