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기행_이순신 장군과 서애 유성룡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23.08.03
- 최종 저작일
- 2023.03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 본 문서(hwp)가 작성된 한글 프로그램 버전보다 낮은 한글 프로그램에서 열람할 경우 문서가 올바르게 표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최신패치가 되어 있는 2010 이상 버전이나 한글뷰어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차
1. 유성룡
2. 이순신
3. 이순신과 유성룡의 공통점
1) 성장과정
2) 업적
3) 임진왜란
4. 다른점
5. 두 분이 주는 나의 교훈
6. 참고문헌
본문내용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은 1542년(중종 37) 10월에 의성현 사촌 마을의 외가에서 아버지 유중영(柳仲郢, 1515~1573))과 어머니 안동 김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이다. 1558년 17세 때 세종대왕의 아들 광평대군의 5세손 이경의 딸과 혼인하였다. 그는 어린 시절 조부와 부친으로부터 가학(家學)을 전수받고 4세 때 이미 글을 깨우친 천재로 어린 시절부터 학자가 되는 꿈을 가졌다. 20세에 관악산 암자에서 혼자 [맹자]를 읽을 때 그 소문을 들은 승려가 도둑으로 변장해 유성룡의 담력도 시험하였다. 이때 굳은 의지로 조금도 동요하지 않으며 글을 읽고, 승려는 그가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것이라 전한다. 또 스펀지처럼 학문을 빨아들이는 그를 보고 “마치 빠른 수레가 길에 나선 듯 하니 매우 가상하다”라고 찬탄을 퇴계 이황이 하였다. 퇴계의 학문과 인격을 흠모해 배우기를 힘쓰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을 인생 최고의 목표로 두었다. 스승인 이황 선생을 통하여 유성룡이 가장 관심을 갖고 배운 책이 [근사록(近思錄)]이었다. [근사록]은 성리학자들의 사상과 학문을 간추린 것으로, 송나라 때에 주자(朱子)와 여조겸(呂祖謙)이 편집한 것이며,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근사록]은 향후 그의 학문적 방향을 결정짓는 주요한 토대가 된다.
참고 자료
인물한국사, 정성희, 장선환 임진왜란의 국난을 극복한 명재상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