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설교문 예시 <창세기> 12
- 최초 등록일
- 2023.07.15
- 최종 저작일
- 20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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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설교문 예시 <창세기> 12"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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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오늘은 하갈의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창 16:1-2을 읽어드립니다.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생산치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본문을 묵상하면서 개역한글 성경의 ‘생산’이란 말이 제겐 인상적이었습니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생산적 관계가 아닌 사랑의 관계를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아담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습니다. ‘생산적’ 관계가 아닌 ‘사랑’의 관계였던 거죠. 그래서 예수님도 포도원 품군의 비유를 이야기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일한 시간과 관계없이 모두 하루 치 품삯을 준 건 그 관계의 지향점이 ‘생산’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사랑’에 있었던 겁니다. 반대로 관계가 사랑의 약속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생산’에 집착하게 되면 존재는 불행해집니다. 사래는 약속의 자녀를 임신하지 못하는 것이 자신의 문제라고 봤을 겁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종인 하갈을 소개했겠죠. 사래는 이건 아브람을 위한 일이라고 자위했을 겁니다. 아름답고 순종적이었을 여종 하갈도 자기가 따르는 여주인을 위해 그 일을 했을 겁니다. 그들은 모두 미래를 향한 희망과 장밋빛기대를 품고 있었겠죠. 하지만 겉으로 봤을 때 그 모든 건 사랑으로 포장된 일이었지만 그들의 목표는 ‘생산’이었죠.
사실 그들이 한 일도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모든 것이 합법적이었고 이성적인 판단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관습적으로 문제가 없는 일을 선택하는 것과 사랑으로 행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죠. 그런 점에서 종교나 삶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극단적인 예가 랍비의 유전과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바리새인들입니다. 그걸 거부한 단적인 사례 또한 예수님입니다. 그는 통속적인 것, 관습적인 것을 비판하고 진정한 사랑의 길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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