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민요의 계보와 발전과정
- 최초 등록일
- 2023.06.19
- 최종 저작일
- 2023.05
- 9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1,200원
* 본 문서(hwp)가 작성된 한글 프로그램 버전보다 낮은 한글 프로그램에서 열람할 경우 문서가 올바르게 표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최신패치가 되어 있는 2010 이상 버전이나 한글뷰어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개글
"경기민요의 계보와 발전과정"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경기민요란 서울과 경기도지방에서 전승되는 민요라 하겠으나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는 경기긴잡가를 가리킨다. 잡가(雜歌)란 가곡(歌曲), 가사(歌詞)와 같은 정가(正歌)의 대칭인 속가(俗歌)라는 뜻으로 쓰였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속가 가운데 좀 긴 통절형식(通節形式)의 좌창(坐唱)을 잡가라 하며 경기잡가 가운데 느린 장단으로 된 십이잡가(十二雜歌)를 긴잡가 라고 일컫는다. 경기잡가는 서울 문(門)안과 근교의 수공예의 장인들이나 채소밭을 가꾸던 밭쟁이 한량(閑良) 출신 소리꾼들에 의하여 전승 발전되어 왔다. 특히 서울 만리재에서 청파(靑坡)에 이르는 사계축 소리꾼들이 잡가를 잘 하였다 한다. 이들은 겨울에 파를 기르는 움집을 크게 만들었는데, 그 안에 소리방(房)을 꾸미고 여기에 둘러앉아 장고 장단에 맞추어 소리를 하였다.잡가 명창으로 조선 말 속칭 추(秋), 조(曺), 박(朴)이라는 3인을 꼽는다. 추조박이란 기교(技巧)에 뛰어난 추교신(秋敎信), 성대(聲帶)를 잘 타고난 조기준(曺基俊), 잡가로 이름이 높던 박춘경(朴春景)을 가리키는데 박춘경이 잡가를 많이 지어 잘 불렀다 한다. 이들의 뒤를 이어 한인호(韓仁浩), 주수봉(朱壽奉), 최경식(崔景植), 박춘재(朴春載)와 같은 잡가 명창들이 났고 뒤이어 이창배(李唱培), 김순태(金順泰), 최정식(崔貞植), 이진홍(李眞紅) 등이 활약하였으며 이들의 후배인 안복식(安福植, 예명 안비취 安翡翠), 이경옥(李瓊玉, 예명 묵계월 墨桂月), 이윤란(李潤蘭, 본명 이은주 李銀主)이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사계축이란 조선 시대 행정구역으로 용산방(龍山坊) 이하의 네 개의 계(契), 즉, 청파(靑坡) 1, 2, 3, 4계를 포함한 네 계 지역을 말한다. 용산방은 성문과 가까우면서 18세기 말에 이미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