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유산 탐방(강원.원주) 탑사
- 최초 등록일
- 2023.01.26
- 최종 저작일
- 20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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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 원주시 개관
치악산 서쪽에 자리잡은 원주시는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가장 중심부에 위
치하였고, 강원도의 서남단에 자리잡고 있다. 동남쪽에는 험준한 차령산
맥이 뻗어 내리며 험준한 산악지대를 이루고 있다. 원주천이 서북쪽으로
흘러 섬강으로 유입되고, 섬강은 다시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부론면 부근
에서 남한강에 합쳐진다. 험준한 산, 기름진 평야, 맑은 강을 안고 있는
원주 지방에서는 일찍부터 인류가 생활하면서 문화의 싹을 키우기 시작하
였다. 이미 밝혀진 유적조사에서 돌도끼·돌화살촉·긁개·찍개 등 많은
유물들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수만 년 전 석기시대부터 인류가 생
활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삼한시대에 원주지방은 마한의 가장 동쪽에 속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가 마한의 영토를 통합하였을 때에는 백제의 영토가 되었고, 고구
려·백제·신라 삼국이 정립하였을 때에는 그들의 각축장이 되기도 하였
다. 고구려가 원주 지역을 차지하였을 때에는 평원군(平原郡)을 설치하였
고, 신라가 차지하였을 때에는 북원소경(北原小京)을 설치하였으며, 신라
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북원경(北原京)이라고 하였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 23년(940)에 원주(原州)라고 고친 이래 현재까지 그대로 부르
고 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위정자들은 논공행상이나 통치의 특
수한 목적으로 지방행정구역의 위상을 승격시키거나 격하시켰고, 이와 같
은 정책에 따라서 원주의 행정구역 명칭은 목(牧)이나 도호부(都護府)가
되기도 하고, 또는 군이나 현이 되기도 하였다. 원주의 읍호 변동을 보면
고려 태조 때 원주로 되었다가 고종 때 일신현이 되었으며, 원종 때에는
다시 원주라고 하였다가 정원도호부(靖原都護府)로 개칭하였으며, 충렬왕
때에는 익흥도호부(益興都護府)라고 하였다가 원주목으로 승격시켰다. 그
후 충선왕 때에는 격하하여 성안부(成安府)라고 하였고, 공민왕 때에는
다시 원주목으로 환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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