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식민문화의 잔재 [민족정체성 상실에 관하여]- 한국사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22.12.17
- 최종 저작일
- 20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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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식민문화의 잔재 [민족정체성 상실에 관하여]- 한국사 레포트"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1) 문화적 측면
2) 교육적 측면
3) 개인적 측면
4) 정치 사회적 측면
5) 의료적 측면
3.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무단통치, 이른바 문화통치, 민족말살정책 등으로 우리나라의 민족의식을 저해하고 우리 민족의 분열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 여파로 우리나라 고유한 민족정체성에 위협이 가해지고 일본의 명령에 순종하는 의식이 형성되어 아직까지도 그 영향과 잔재가 우리의 일상 속에 남아있다. 이러한 잔재들은 우리 삶에 깊이 뿌리박혀 민족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근절시켜야할 대상이 되었다. 우리 민족정체성이 상실되는 불필요하고 민족을 분열시키기 위해 일본이 주입시킨 잔재들을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관심을 기울여 알고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문화 ,교육 ,개인, 정치와 사회, 의료적 측면을 중심으로 민족정체성을 상실시키는 일제잔재의 몇 가지 사례들을 조사해 보았다.
2. 본론
1) 문화적 측면
1) -1 축제문화 먼저 지역사회에서 일제가 남긴 축제문화 잔재들을 살펴보았다. 3~4월 꽃이 피는 봄에 많은 사람들이 벚꽃축제를 간다. 그러나 낭만적인 벚꽃축제의 이면은 우리민족 슬픈 역사의 한 부분이다. 벚나무는 오래전부터 우리 강토에 있어왔지만 우리 조상은 벚꽃놀이를 즐기진 않았다. 벚나무는 화살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1920년대 일제강점기, 일제는 민족혼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창경궁 뜰에 일본의 상징인 벚나무 수천그루를 가져다 심었다. 놀이공원이 돼 버린 창경궁에서 조선왕조의 흔적은 사라져갔고, 그렇게 궁궐로서의 존엄성을 잃어가야 했다. 1924년 4월 창경원은 처음으로 색등을 밝히고 밤 벚꽃놀이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창경원은 떠들썩한 유원지로 변모해 버렸다.
참고 자료
창경궁 3부 벚꽃놀이에 가려진 슬픔 (문화유산채널, 한국문화재재단)
벚꽃 축제의 시작은 일제의 민족 말살 시도? (중앙일보)
'세뱃돈' 얼마를 주는 게 적절할까? (이데일리 카드뉴스)
세배 내용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 대백과사전)
[흥미진진 과학세상] (138) 문과와 이과 구분 (소년조선, 2013.09.03.)
조선의 영어교육 (EBS 역사채널 e)
한반도 (시노부 준페이)
‘몸뻬바지’에 숨겨진 슬픈 사연을 아십니까? (스펀지제로, 뉴스엔)
일제문화잔재란 무엇인가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기고)
2030년까지 의사·한의사 면허 하나로 통합, 의료 일원화 (news1)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국민요구에 응답한 사법부 판결 ‘주목’ (한의신문)
大韓醫士會(국사편찬위원회,한국사데이터베이스,국사관논총)
朝鮮醫療令(일제침략하한국36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