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 최초 등록일
- 2022.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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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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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유길준의 모든 자료:
유길준은 당시 노론계 양반 가문 출신이다
뒷날 갑신정변의 주역이 되는 김옥균, 박영호, 서광범, 홍영식 등이 박규수의 사랑방에 모여
박규수의 연함집과 서양의 신학문을 공부해 개화사상에 대해서 알게됐는데
유길준 역시 이들과 교류했다
이때 유길준은 박규수로부터 해국도지①라는 책을 소개 받는다
이후 유길준은 경세에 관심을 두고 실학과 중국의 양무운동②에 대한 서적들을
탐독했다
과거준비를 위해 읽었던 유교경전을 뒷전으로 미뤄내고 마침내 19살에 과거를 포기했다
나아가 과문폐론③이라는 글로 과거제도를 비판했다
1880년대 초반 조선은 개화문제로 고민 하고 있었다
이미 서구열강과 일본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때였다
고종은 마침내 일본조사 시찰단을 꾸린다 이른바 신사유람단④으로 알려진 바로 그들인데
고종은 그들로 하여금 일본의 실정을 살피려 한 것이다
하지만 척화파의 반대가 극심하자 시찰단을 암행어사로 위장 부산으로 파견했다
1881년 신사유람단은 무사히 일본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이때 유길준도 수행원으로 일본으로 갔다
신사유람단이 귀국할 때 유길준은 일본에 남았는데 일본유학을 위해서 였다
남아서 도교의 게이오 대학⑤에 유학을 한다
이미 서양문물에 심취했던 후쿠자와 유키치의 영향을 받으며 유길준은 개화사상을 더욱 키워 나갔다
그리고 유학 2년 만에 공부를 그만두고 귀국한다
1882년 봄 조선과 미국간의 조·미조약이 체결되고 여름에는 임오군란이 일어나는등 조선의
국내외 정세가 긴박해지자 조선정부는 일본유학생 유길준을 불러들였던 거였다
유길준 같은 외교, 문화 방면의 전문가를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미국 동부에 작은 해안도시 셀럼(미국 매사추세츠주) 이 도시 부근에 유길준이 미국 유학시절 맨 처음 다닌 학교가 있다 그것은 더 거버너스 아카데미⑦이다
유길준이 이학교로 유학하게 된 것은 조선과 미국의 교류역사와 관여 있다
1882년 조선과 미국은 조·미조약을 체결하고 상대국의 공사를 설치하기로 합의한다
그러나 조선은 재정상의 어려움으로 미국에 공사를 설치하는 대신 1883년 보빙사⑧라는 사절단을 보낸다 유길준은 바로 보빙사 사절단의 수행원 이었다
이때 민영익은 유길준을 미국에 남아 유학하도록 한다
참고 자료
http://100.naver.com/100.nhn?docid=124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