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작품설명,작품배경,작품소개,두여낭모색환혼기
- 최초 등록일
- 2022.08.18
- 최종 저작일
- 2022.08
- 20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4,000원
목차
1.작가와 작품 설명
2. 작품배경
1) 사회적 배경
2) 사상적 배경
3) 명대 사회와 여성
3. 작품소개
1) 작품의 줄거리
2) 연원: 두여낭모색환혼기
3) 연원과의 차이 : 모란정과 두여낭모색환혼기
4. 작품 분석
1) 작품의 구성
2) 인물 분석
3) ‘夢’의 해석
4) 모란정의 공간 구조
5) 모란정에 나타난 예술성
5. 주제와 의의
본문내용
탕현조는 明 世宗 嘉靖 29년(1550)에 江西 撫州府 臨川縣 文昌里에서 태어났다. 자는 義仰, 호는 若士 혹은 海若士며, 自號는 淸遠道人이다. 그의 집안은 조상 4대가 문명을 떨친 문인 집안이었는데 특히 아버지는 학문을 좋아하고 희곡작품을 좋아해서 그의 집안에는 千種이 넘는 희곡 작품이 있었다 한다. 이러한 가정의 분위기 속에서 탕현조는 자연스럽게 어려서부터 元曲을 접할 수 있었다.
탕현조의 생애는 '臨川시기-南京시기-徐聞,遂昌시기-臨川시기' 네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그는 유년시절부터 재능이 출중하였는데, 13세 때 羅汝芳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14세 때 秀才가 되었다. 20세 때는 향시에 급제하였지만 회시에서는 네 번이나 낙방하였는데, 이는 실력 부족 탓이 아니라 그가 권력에 빌붙지 않았던 탓으로 전해진다. 결국 만 33세의 나이로 비로소 등과하여 進士가 된다. 이 때를 첫 번째의 臨川시기라 할 수 있고, 이 시기에 첫 번째 희곡작품《紫簫記》가 쓰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탕현조는 진사로 관직에 나간 후 남경에 부임하는데 이때부터 서문으로 좌천되기까지 약 7년간을 남경시기라고 한다. 이곳에서의 제임을 마지막으로 관직생활을 청산하고 낙향한다. 이때를 서문, 수창시기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작품인《紫釵記》은 이 시기에 쓰여졌다.
임천으로 낙향한 후 玉茗堂이라 명명한 서재에서 칩거하며 오로지 시작과 극작에 몰두하였는데, 이 때부터 서거 때까지가 후반부의 임천시기이다.
《牡丹亭》은 탕현조가 관직에 있을 때 구상하여 옥명당에서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南柯記》와 《甘鄲記》은 낙향 후의 작품이다. 그러므로 《牡丹亭》은 그의 다섯 개의 희곡작품 중 중간시기 작품으로, 가장 문학적인 열정과 의욕이 왕성하던 시기의 작품이다.
이렇듯 탕현조가 일생동안 창작한 희곡은 《紫蔬記》《紫釵記》《牡丹亭》《南柯記》《邯鄲記》다섯 편인데, 그 중《紫蔬記》를 제외한 네 작품을 玉茗堂 四夢이라고 한다.
그는 희곡을 다른 시문과 같은 다른 학문과 동등한 위치에 두고 창작하며 전문가로서 희곡을 학문처럼 존중하였다. 이는 당시의 많은 희곡 작가들이 희곡을 단지 일개 문인의 餘技로서 즐기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참고 자료
中國文學史/ 김학주 / 신아사
모란정 연구 / 강영매 / 연세대 대학원
희곡모란정의 심미경계 / 황봉구
시사랑 문예대학 www.poemq.or.kr
국회도서관 홈페이지 www.nanet.go.kr
열린사이버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