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외국어대학교 현대미디어이론1 1주차 요약과제
- 최초 등록일
- 2022.08.14
- 최종 저작일
- 20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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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첫 번째 이상면 교수의 논문인 「영화의 진정한 시작은 언제인가? - 19세기 후반 영상의 과학기술적 발전과정에 대한 논의」에서의 중요한 점들 중에서 우선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라프가 나오기 전까지 어떤 영화기계들이 있었는지에 대해 살펴보면, 1895년 12월 28일 뤼미에르 형제가 파리에서 필름을 상영하기 훨씬 전인 유럽에서는 19세기 중엽부터 유리 슬라이드로 짤막한 동영상을 보여주는 마술환등을 비롯해서 디오라마, 파노라마 등의 기구들이 있었다.
당시 유리 슬라이드를 통해 약간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마술환등 공연은 폭넓은 계층의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라프와는 차이점이 있다. 바로 이러한 마술환등을 이용한 공연은 이동식 필름을 통해 움직임을 길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시기에는 연속사진 촬영방법이 개발되는 정도였지만 계속 개발되어 1892년 쯤 마술환등의 불빛을 이용하여 3-5분 정도 되는 비교적 긴 그림띠를 극장에서 스크린 투사식으로 공개상영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이러한 때에 1889년 미국의 조지 이스트만에 의해 회전용 셀룰로이드 필름이 제작되어 이후 영화기술에서는 획기적인 발전이 이루어져 짤막한 분량의 필름을 촬영하고 영사기에서 이 필름을 회전시킬 수는 있었지만 영사기술 장치가 완벽하지 않아서 자연스러운 이미지 연결은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 순간적인 빛의 명멸 현상을 이용하여 필름을 수동식으로 회전시키는 시도가 잇달아 생겨났는데 이것은 필름영사기의 초기 형태였다.
또 나머지 영화기계들을 살펴보면, 영화의 선구자들 가운데서 가장 앞선 사람인 루이 아이메 오구스탱 르 프랭스가 있는데 1887년 구멍이 뚫린 젤라틴 필름을 사용하는 16개 렌즈가 달린 촬영기겸 영사기를 개발했고 1888년에는 단일 렌즈로 된 촬영기-영사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프랭스의 이 기구는 결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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