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엘리트가 우리 사회를 먹여 살리는 것일까
- 최초 등록일
- 2022.08.07
- 최종 저작일
- 20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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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소수 엘리트가 우리 사회를 먹여 살리는 것일까"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제안서
1) 주제문
2) 제 목
3) 전체 단락의 개요
4) 참고문헌 목록
2. 소수 엘리트가 우리 사회를 먹여 살리는 것일까
본문내용
소수 엘리트가 우리 사회를 먹여 살리는 것일까
학창시절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해본 적이 있던 나였지만, “돈도 실력이야.”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한국이었다. 그 말을 듣고 어쩌면 미국보다 우리나라가 더 고도화된 능력주의 사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능력주의의 정도가 어디가 더 심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통해서 스스로를 입증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해서는 또 다른 성취를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받아야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시험과 같은 정당한 경쟁과정을 치르지 않았거나 보상받을 만한 능력이 있지 않은 사람들이 과도한 이익을 취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만 봐도 한국 사회가 얼마나 형식적인 공정성에만 목을 매는지 알 수 있다.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에게 그에 합당한 몫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 즉 능력주의가 한국의 주요 공정 담론이다. 엘리트주의를 다루기에 앞서 우리 사회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능력주의라는 이념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다니엘 마르코비치는 미국 사회의 능력주의의 함정을 이야기하며 엘리트 세습을 비판한다. 신분이 세습되던 귀족사회의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고안된 능력주의 사회에서도 결국 엘리트라는 신분과 그 부가 세습되는 경우가 자주 보였기 때문이다. 마르코비치가 가장 경계하는 능력주의의 표본이 한국의 모습과 닮아있었고, 공부를 통해 신분을 입증하는 한국의 집착이 어떤 사회구조를 만드는지 숙고해볼 수 있었다.
여기서 나는 삼성 이건희 전 회장의 ‘상위 1%가 나머지 99%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미 사회에 만연한 이 말은 소수 자본가의 우월의식을 강화하고 민중들에게 빈부격차를 용인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누가 누구를 먹여 살리는가'의 문제는 단순한 수사학의 차원이 아니라 더 많은 문제의식을 내포한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 자료
박권일, 「한국 능력주의의 형성과 그 비판:『고시계』텍스트 분석을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8, 19~26쪽.
다니엘 마르코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