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중국 양주화파에 대한 소고 - 양주팔괴를 중심으로 -"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양주팔괴의 기원과 성립 배경
Ⅲ. 주요작가와 작품
Ⅳ. 후대에 미친 영향
Ⅴ.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18세기 청(淸)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안정을 이루었다. 이러한 번영의 시기에 강소성 양주 역시 염업을 바탕으로 한 상업자본이 형성되어 많은 상인들이 모여들고 신흥도시로 발돋움했다. 상인들 중에는 문학과 예술에 관심을 보이며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자들도 있었고, 예술가들의 예술창작 전반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가 기존의 화풍과는 다른 독창적인 ‘양주화파(揚州畵派)’를 형성했고, 그들 중 ‘양주팔괴(揚州八怪)’라 불리는 집단은 양주화파를 대표하는 집단으로서 개성적이고 파격적인 화풍을 구사했다. 본고에서는 양주화파를 대표하는 집단인 ‘양주팔괴’를 중심으로 그들의 성립배경과 주요작가 · 작품에 대해 살펴보고 나아가서 후대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고자한다.
Ⅱ. 양주팔괴(揚州八怪)의 기원과 성립 배경
1. 양주팔괴의 기원과 정의
‘양주팔괴(揚州八怪)’란 청나라 중기[康熙(1661∼1722) 末年 ~ 乾隆(1736~1795)], 양주에서 활동한 양주화파의 화가들 중에서도 개성이 뛰어난 몇 명을 추린 것으로, 양주화파의 주요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석도와 팔대산인 이후 매너리즘에 빠진 청대 화단에 근대적이고 새로운 감각의 문인사의화를 발전시켰다.
‘양주팔괴’라는 용어는 청말(1883년) 왕윤의 『양주도원록』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동시에 함께 일어나 한 무리를 이루었다. 괴이함(怪)을 여덟(八)로 명하였으니 화풍이 하나가 아니었다.(중략)
‘怪以八名’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八은 여덟 명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혹자는 ‘양주방언에서 ’八‘은 사람들이 폄하할 때 친근하게 자주 쓰는 말로 숫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형용사이다. 鄭奇黃俶成 編, 『양주팔괴평론집』, 강소미술출판회, 1989, p. 199.
’라며 팔괴의 구성원을 8명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즉, ‘팔괴’는 개성적인 양주화파를 뜻하는 포괄적 개념으로도 이해할 수도 있다. 또한 이 ‘怪’라고 일컫을 수 있는 속성은 전통회화와 부합하지 않는 창작경향과 예술 특색과도 연결시켜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양신 외 공저, 정형민 역, 『중국회화사 삼천년』, 학고재, 1999.
鄭奇黃俶成 編, 『양주팔괴평론집』, 강소미술출판회, 1989.
單國强 저; 유미경 외 공역, 『중국미술사』 4권, 다른생각, 2011.
周時奮 저, 서은숙 역, 『양주팔괴』, 창해, 2006.
이만재 저, 유미경 역, 『해상화파 미술문화』, 2005.
葛路 저, 강관식 역, 『중국회화이론사』, 돌베개, 2010.
북경 중앙미술학원 미술사계 중국미술사 교연실 저, 박은화 역, 『간추린 중국 미술사』, 1998.
하영준, 『중국 화조화』, 서예문인화, 2006.
지순임 외 공저, 『명·청대 회화 예술』, 아름나무, 2009.
김백균, 「明末淸初 畵에 대한 새로운 인식」, 미술사학 제23집, 2004.
유미경, 「양주 휘상의 문화적 욕구와 그림시장에 미친 영향」, 동양미술사학 Vol.2, 2013.
조인숙, 「판교정섭의 서화미학사상연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고혜원, 「동심김농의 생애와 예술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
정수진, 「冬心 金農의 繪畵世界」,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