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예술 - (BC 500-AD 2000년) 내 서양사에서 전력상 열세에도 불구하고 사령관의 창의적 지략 발휘로 승리한 전투를 1개 선정하여 작성하시오.
- 최초 등록일
- 2022.03.25
- 최종 저작일
- 2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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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서론
II. 본론
1. 크라곤자 산 전투의 전말
2. 전투 승인 분석
3. 롬멜의 역사적 평가
III. 결론
IV.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롬멜은 독일 나치의 장군으로 사막의 여우로 불렸다. 하지만 그는 전장에서는 부하들과 함께 최전선을 이끄는 군인으로서 부하들이 진정으로 존경하는 장군이었으며 뛰어난 전술가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히틀러에 의해 잔혹한 학살로 인한 잔혹함, 편협과 전쟁광적인 부분이 강했지만, 롬멜이라는 군인의 장교로서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리더십과 전술은 기존의 이론과 전술의 틀을 깨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이탈리아 크라곤자 산에서 벌어진 전투는 적군의 병력수 대가 1/17의 약세를 극복하면서 승리를 끌어냈는데 그러한 승리에는 정석을 벗어난 전술과 과감한 실행력이 함께 했다.
Ⅱ. 본론
1. 크라곤자 산 전투의 전말
제1차 세계대전이 종반에 접어들었던 1917년 10월 독일군 장교 에르빈 롬멜 중위는 당시 26세의 나이로 이탈리아 북부 톨마인 지방에 있는 알프스산맥 산악지대에서 고지를 공격하기 위해 지휘하고 있었다. 전투를 시작한지 3일째 되는 날 롬멜은 독일군부대를 정비해 7개 중대를 1개 대대로 재편성했다. 7개 중대라고는 하지만 병력은 상당히 부족했다. 그들 부대 앞에 있는 크라곤자 산은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3개의 봉우리로 돼 있었는데 산 중턱 800미터 지점 부근에 정상과 평행해서 능선과 중봉이 형성돼 있었고 하나의 중봉 8부 능선인 약 600미터 부근에는 능선과 평행으로 요새화된 축성 진지가 기다랗게 구축돼 있었다.
이 진지를 엄호하기 위해 정상부근의 봉우리와 능선 중턱에도 요새를 따라 진지가 구축되어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아래의 진지를 완전히 내려다보면서 제어할 수 있는 곳이었다. 3개의 산에 이탈리아군 5개 연대가 진을 치고 있었고 이탈리아군은 중무장한 채 전투 경험도 제법 있었다. 그중 한 연대는 여러 번 부대 표창받은 이탈리아군 전체에서도 유명한 연대였다. 이탈리아군은 중무장한 채 전투 경험도 제법 있었다. 그중 한 연대는 여러 번 부대 표창 받은 이탈리아군 전체에서도 유명한 연대였다.
참고 자료
신화로 남은 영웅 롬멜, 리더십을 되묻다. 교보문고 독서경영견구소 책임연구원, 김종철
롬멜을 통해서 본 지상작전 원칙의 중요성, 육군 제3사관학교, 김정기소령
서거 70주년, 재조명 받는 ‘사막의 여우’ 롬멜
늘 최전선에서 조직을 이끈 에르빈 롬멜 “리더의 역할은 현장에서의 솔선수범이다” 매일경제, 2018. 2. 1
출처(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8/02/74881/)
서거 70주년 재조명 받는 사막의 여우 롬멜, 중앙일보, 2014. 11. 8
출처(https://www.joongang.co.kr/article/16361085#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