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릿말
Ⅱ. 연보
Ⅲ. 본론
1. 생애
2. 사상
Ⅳ. 맺음말
Ⅴ. 참고문헌
본문내용
현재 한국인들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와 공산주의에 대한 배척선고가 내려진 지도 벌써 20년이 넘어가고 있는 남한의 오늘날에는, 한국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관한 분류나 전파, 이를 연구했던 혹은 이를 위해 힘썼던 수 많은 인물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이는 초중고의 역사, 사회 교육 내용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반공’, ‘빨갱이’를 외치며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억압하던 예전에 비해서는 보다 자유롭게 선택하여 연구할 수 있게 되긴 하였지만,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데 있어서는 여전히 이전의 흐름이 남아있다. 이전에 한국의 근현대사를 학습할 때 아무도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시대의 한 흐름으로서 대충 얼버무리는 것이 전부였다, 만약 역사를 전공하고 근현대사를 선택하여 배우지 않았다면, 어쩌면 오래동안 모르는 채로 살았을 지도 모른다. 이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의 투쟁과 노력으로 인해 분명히 오늘날 현대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또한 한민족의 과거와 오늘날, 미래를 알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연구했던 ‘박헌영’이라는 인물에 대해 위인이라거나 영웅이라고 표현하는 교과서는 없다. 하지만 제국주의에 몸을 던져 싸우고, 해방후에 민중을 위해 열심히 애썼던 그의 생애와 사상연구를 조사해봄으로써 당대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에 대해 한 발짝 다가가고자 한다.
연보
○ 출생-1900년 5월28일(음력 1900년 5월1일) 충남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 299번지에서 출생.-> 박헌영의 출생 연월일에 대해 세 가지 설이 기록에 남아있다.
참고 자료
윤해동, 「박헌영의 아들 원경 스님 대담 : 혁명과 박헌영과 나」, 『역사비평』 1977년 여름, 104쪽(본서 ‘부록’으로 재수록).
김윤식, 「『폐허』 에스페란토 표지 시와 中野重治의 ‘비내리는 품천역’」, 『역사비평』 1922년 여름, 368쪽
「高警 第2355號의 2, 國外情報 高麗共産黨靑年團 組熾의 件」1921.7.20.
박헌영, 「이력서」(러시아어), 1945.9.
「스티코프 비망록」, 『중앙일보』 1995.5.9.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단과 중앙상무위원회 선거」, 『함람로동신문』1949.6.30.
전명혁,(2004).[인물 바로 보기 4] 박헌영,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조선의 혁명 투사.내일을 여는 역사,(15)
안재성, 「박헌영 평전」, 실천문학사, 2009,
임경석, 「이정 박헌영 일대기」, 역사비평사, 2004,
『남로당연구자료집』1, 고려대아세아문제연구소,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조선에서의 소미공동위원회 사업에 대하여」, 1946.7.26.(김국후, 『평양의 소련군정』, 한울, 2008,
박갑동, 「내가 아는 박헌영」, 『중앙일보』, 1973.9.27.
「박헌영의 비호하에서 리승엽 도당들이 감행한 반당적 반국가적 범죄적 행위와 허가이의 자살사건에 관하여」, 『조선로동당 전원회의 제6차회의 결정서, 1953년 8월 5-9일』.
박헌영, 「동학농민란과 그 교훈」,
沈之淵,(1995).朴憲永의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론과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 건설운동.한국사 시민강좌,17(),
박헌영, 「3.1운동의 의의와 그 교훈」,
박헌영, 「자필이력서」,1928.11.20.
박헌영, 「공산주의」, 1926.4.26.
박헌영, 「상해폭탄사건은 무엇을 말하느냐?」, 『콤무니스트』6호, 1932.7.
「현정세와 우리의 임무」, 『전집』제5권, p.67.
박헌영, 「민족통일정부를!」, 『백민』1권1호, 1945.12. 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