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건축 (임시수도기념관, 동아대 박물관 답사 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22.02.24
- 최종 저작일
- 2013.11
- 9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500원
* 본 문서(hwp)가 작성된 한글 프로그램 버전보다 낮은 한글 프로그램에서 열람할 경우 문서가 올바르게 표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최신패치가 되어 있는 2010 이상 버전이나 한글뷰어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개글
"근대건축 (임시수도기념관, 동아대 박물관 답사 보고서)"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건축물의 역사적 분석 및 의의
1) 이승만 관저 (임시수도기념관)
2) 동아대학교 박물관 (임시수도정부청사)
3) 등록문화재의 의의
2. 건축 양식 분석
3. 건축물 답사 후 느낀점
1) 소감
본문내용
이 건축물은 임시수도 시기 대통령관저(부산경무대)로 이승만 대통령 내외 및 그의 비서들이 집무를 수행하고 주요한 국빈들을 맞이했던 임시수도 기념관이며 우리나라 근 현대사의 역사를 간직한 역사적 건축사적 가치가 있는 국가등록 문화재이다.
1926년 준공었고 한국전쟁시 부산의 임시수도시절(1950~1953)에는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다.
1983년 경남도청이 창원으로 이전하게 되자 부산시에서 건물을 매입하여 다음해에 한국전쟁기의 각종사진 재료등을 전시하는 임시수도 기념관으로 개원하였고 당시의 실내와 구조를 그대로 재현하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러한 건축물의 양식이 도입되게 된 배경을 알아보겠다.
일본이 한국을 강점했던 1910~45년 사이의 한국에서의 건축활동은 일본의 건축문화의 연장으로써, 일본에서 급속히 성장하고 있던 서구문화가 그대로 이식되던 시기였다.
이것은 우리의 근대건축이 형성될 시기였으므로, 우리의 진실한 건축적 기반이 조성되는 것을 방해하였으며, 나아가 8·15광복 후 다른 나라와 보조를 같이 하여 현대건축의 길을 여는 것을 막았다.
이 당시(1920~30)는 일본의 건축계가 절충주의와 전위적인 서구건축 세제션(secession) 유파의 건축이 횡행하던 시기이다. 이 당시의 일본 건축계의 사정이 바로 우리 건축계의 현실이었다. 이렇게 한국의 근대 건축은 일본인 또는 외국인의 손을 빌려서 일본인에 의하여 서구건축을 그대로 옮기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당시의 대표적 건물로는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1912년 준공)·구 조선호텔(1914)·경성우체국(구 중앙우체국, 1915년 준공)·서울역(1925) 등이 있으며, 이들은 르네상스 건축의 아류, 또는 절충주의 건축으로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양식적 표현이 전혀 보이지 않는 합리주의적 건축의 최초 시도는 1927년 건립된 남대문 옆 구경성상공장려관(대한무역진흥공사 구사옥)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