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는 말
2. 이육사(李陸史)
1) 이육사의 약력
2) 이육사의 시세계
3. 이육사(李陸史) 「광야(曠野)」
1) 이육사 「광야」 분석
2) 이육사 「광야」 감상 및 평가
4. 나오는 말
5.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들어가는 말
일제 강점기는 우리 역사에서 치욕의 역사로 기억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의 상황은 효율적인 식민지배를 위한 탄압, 영구예속화를 위한 고유성 말살 및 우민화, 철저한 경제적 수탈등이 이루어졌다. 무단 통치, 문화 통치, 민족 말살통치의 수순으로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정신까지도 통제하였다.
육사 이원록은 일제 강점기의 절망적 상황 하에서 자유로운 민족의 혼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당시 식민지 상황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시인이었다. 본고에서는 그의 일생과 시세계에 대해서 알아본 후, 대표시 「광야(曠野)」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더불어 그의 「광야(曠野)」에 대한 나의 평가와 감상을 피력해보고자 한다.
2. 이육사(李陸史)
본명은 원록(源祿) 이고, 후에 원삼(源三) 또는 스스로 이름지어 활(活)이란 이름을 쓰기도 했다. 1930년 1월 3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그의 첫 시 「말」이 '이활'이란 이름으로 게재되었다. 육사(陸史)란 아호는 1930년 그의 글에서 처음 사용된다. 그가 일경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 있을 때에 수인번호 ‘264’를 취음해서 지은 것으로 작품 활동은 거의 이것으로 하였다.
2-1. 시인의 약력
이육사(李陸史)는 1904년 음력 4월 4일 경상북도 안동(安東)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진성(眞城)으로 퇴계 이황선생의 14대 손이다. 1909년 조부 치헌 이중직에게서 소학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한문학을 수학하였고 1916년 무렵 보문의숙에서 수학하였다. 1919년 육사의 나이 16세가 되는 때에 도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20년 안동시 녹전면 신평리 듬벌이로 이사, 부모를 비롯한 가족 모두 대구로 이사, 석재 서병오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1921년 영천군 화북면 오동 안용락의 딸 일양과 결혼하였다. 백학학원에서 수학하였다. 백학학원에서 중등과정을 마친 후 9개월간 교원으로 근무를 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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