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광론>(嚴光論)을 통해 살펴본 조식의 사상적 틀
- 최초 등록일
- 2021.02.25
- 최종 저작일
- 20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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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엄광론≫(嚴光論)을 통해 남명 조식의 사상적 틀을 살펴보았습니다.
목차
1. 《엄광론》의 배경 및 선정 이유
2. 원문(번역문) 및 풀이
3. 해석
3.1 들어가며
3.2 첫 번째 근거 검토
3.3 두 번째, 세 번째 근거 검토
3.4 근거들의 종합적 검토
4. 나가며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엄광론》의 배경 및 선정 이유
《엄광론》은 후한시대 엄광(嚴光)이란 인물에 대한 조식이 자신의 견해를 밝힌 것이다. 엄광은 광무황제와 어린 시절 함께 공부한 단짝이었다. 엄광의 총명함을 기억하고 있던 광무제는 황제가 되었을 때 그를 찾아 조정에서 함께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엄광은 이름을 숨기고 산 속에서 소박하게 지내고 있었다. 겨우 엄광을 찾아낸 광무황제는 그에게 간의대부라는 관직을 제의하였으나 그는 거부하고 부춘산에서 낚시를 하며 여생을 지냈다고 한다. 조식은 엄광을 성인의 부류로 여기며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를 하고 있다.
이 글은 전형적인 처사(處士)의 문제를 담고 있다. 재야의 지식인들이 관직에 나아감으로써 현실에 참여해야 마느냐의 문제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저 개인적 직업의 차원을 넘어선, 철학적 이념의 문제와도 결부된다. 조선은 철인통치를 지향했고, 한 정권의 정치 방식은 그것을 뒷받침 하는 거대한 사상체계의 현실적 표출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사의 문제는 당대 학자들의 철학적 입장과 그 궤를 같이 하였기 때문에, 이를 통해 조식의 사상 또한 잘 드러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실제로 《엄광론》은 상당 부분 당대 현실을 반영하고 있고, 엄광 또한 조식 자신과 유사하게 그려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 원문(번역문) 및 풀이
<출처>
『남명집』,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한길사, 2001.
『남명집』, 오이환, 지만지, 2009.
가.
광무황제 27년(서기51)에 처사인 엄광을 불러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임명했으나, 광은 끝내 굽히지 않고서 부춘산(富春山)으로가 낚시질하다가 생을 마쳤다. 나는 엄자릉(嚴子陵)을 성인(聖人)의 부류라고 생각한다.
광무황제는 즉위한지 27년 만에 산 속에 묻혀 살던 선비 엄광을 찾아내어 간의대부(諫議大夫)라는 벼슬을 제안하지만, 엄광은 끝내 거절하고 부춘산(富春山)으로 들어가 낚시를 하며 여생을 마감했다. 나는 엄자릉(嚴子陵)이 성인(聖人)의 부류라고 생각한다. (쉬운 풀이)
참고 자료
남명집,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한길사, 2001.
남명집, 오이환, 지만지, 2009.
『남명 조식의 철학사상연구』, 손영식·조남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2.
『남명 조식』, 박병련·이종묵·정순우·한형조, 청계, 2001.
<엄광론의 구조를 통해 본 남명의 비판정신>, 정우락,《동방한문학》11(1995), 47-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