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경전으로서의 동경대전
- 최초 등록일
- 2021.02.16
- 최종 저작일
- 20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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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학 경전으로서의 동경대전"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포덕문
2. 논학문
3. 수덕문
4. 불연기연
5. 주문
6. 축문
7. 입춘시
8. 절구
9. 강시
10. 좌잠
11. 화결시
12. 탄도유심급
13. 결
14. 우음
15. 팔절
16. 제서
17. 영소
18. 필법
19. 유고음
20. 우금
21. 통문
22. 통유
23. 의식
24. 발문
본문내용
< 편찬과정>
1863년 11월 경에 수운선생은 종이 만드는 공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최시형을 불러 경전을 인쇄하라는 분부를 내렸으나 12월 10일 체포되어 진행될 수 없었다. 영해 교조신원운동(이필제 의거 : 1871)과의 연계로 포교에 타격을 입게 된 해월 최시형선생은 흩어진 교도들을 모으고 한편으로는 포덕을 계속하면서,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강원도 인제에 이르러 1876년 인제 접주 김계원(金啓元)의 집에서 설법제(說法祭)를 행한다. 그리고 자신이 늘 지니고 있던 수운선생의 친필 유고(遺稿)들을 편찬하기 위해 1879년(고종 16년) 10월에 도적(道跡) 편찬소를 정선 방시학(房時學)의 집에 설치했다. 강시원을 비롯한 각 접주를 중심으로 원고를 집필하여 남의 눈에 띄지 않게 굳게 봉인하고 날인하여 깊이 감추어 두게 되었는데, 이 책이 “최선생문집 도원기서(崔先生文集道源記書)”이다.
1880년(고종 17) 감인(監人) 강시원(姜時元)ㆍ전시황(全時晄), 교감(校監) 전시봉(全時奉)ㆍ심시정(沈時貞)ㆍ류시헌(劉時憲), 사접(司接) 황맹춘(黃孟春) 등이 판각을 발의하자 각 접중에서 최시형선생의 뜻에 찬동하였다. 1880년 5월 9일 강원도 인제군 남면 갑둔리 김현수(金顯洙, 字는 致雲)의 집에 경전 간행소를 설치하고 6월 14일에 동경대전을 완간한 후 6월 15일 봉고식(奉告式)을 치렀다.
<중 략>
포덕문(布德文)
〈포덕문〉은 1861년 최제우가 전라북도 남원에 있는 선국사(善國寺 : 또는 용천사)에 들어가 한 암자를 ‘은적암(隱寂庵)’이라 이름 짓고 그곳에서 수도하면서 지었다.
세상 사람들이 시운(時運)을 알지 못하고 도덕에 순종하지 않음을 개탄하여 간략하나마 적어내어 가르쳐 보이니 공경히 포덕문을 받아 교훈으로 삼길 바랬다.
수운 선생이 경신년에 전해들은 바로는 서양 사람들이 천주의 뜻이라 하여 부귀는 취하지 않는다 하면서 천하를 쳐서 빼앗아 교당을 세우고 그 도를 행한다는 것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