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만해 한용운의 생애
- 최초 등록일
- 2020.12.24
- 최종 저작일
- 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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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은 근현대사의 위대한 민족지사인 동시에 한국불교의 혁신을 외친 선사와 한국문학사의 저항적 시인으로 대표되는 인물이다. 그의 자(子)는 정옥(貞玉)으로, 본관은 청주이며, 속명은 유천(裕天), 득도 때의 계명은 봉완(奉玩), 법명(法名)은 용운(龍雲), 법호(法號)는 만해이다.
그는 외국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혼란스러운 개항 시기를 살아갔던 인물로, 충청도 결성현(현재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한응준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자작농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한문 공부에 열중하였기에, 상당한 한문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 실제로 9세에 《서상기》, 《통감》, 《서경기삼백주》를 통달하여 ‘옥골신동’으로 소문이 났다. 이후, 그는 16세에 동학농민운동을 겪으며 커다란 번민에 빠졌고, 그의 나이 18세에 의병의 자금을 위해 관가의 돈 1,500냥을 훔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한용운은 관가에 쫓기는 처지가 되었다.
참고 자료
김종인(2016), “한용운 선(禪) 사상의 근대성”, 철학탐구, 43, 1-26
김광식(2019), “만해 한용운 평전”, 시대의 창
박선영(1993), “민족 갱생의 길로 가는 건널목,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 중등우리교육, 126-129
이이화(2019), 이이화의 명승열전, 불광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