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명으로 보는 최충헌과 최항의 생애
- 최초 등록일
- 2020.12.18
- 최종 저작일
- 20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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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며
2. 최충헌(崔忠獻)
3. 최충헌 묘지명(崔忠獻 墓誌銘)
4. 최항(崔沆)
5. 최항 묘지명(崔沆 墓誌銘)
6. 나가며
7.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들어가며
고려 무신정권(武臣政權期)는 통일신라 이래 지속된 유학 바탕의 문치주의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무신들이 정치 전면에 나선 시기였다. 또한 100여년의 존속 기간 동안 수많은 집권자들이 명멸(明滅)해갔다. 무신정권 초기 26년간을 ‘성립기’라 부르는데, 이의방(李義方), 정중부(鄭仲夫), 경대승(慶大升), 이의민(李義旼)이 집권하며 혼란한 시기였다.
그 중 이의민을 제거하고, 무신정권 60년간의 ‘안정’기 혹은 ‘전형적인 무인정치시대를 이룩한 이가 바로 최충헌(崔忠獻)이다. 그는 명종(明宗)을 폐위(廢位)시킨 것을 비롯해 네 왕을 옹립(擁立)시키며 독자적인 정권을 확립해갔다. 최충헌은 세습집권 체제를 구축하여 최씨 가문은 최우(崔瑀), 최항(崔沆), 최의(崔竩)에 이르기까지 62년간 정권을 잡았다.
최충헌이 최씨 무신정권의 시작이었다면, 그 끝은 최항과 최의 집권기였다고 본다. 따라서 본 발제에서는,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즉, 사서(史書)와 묘지명(墓誌銘)의 비교를 통해 그들의 생애와 고려후기 무신정권과 그 사회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2. 최충헌(崔忠獻)
최충헌은 고려 시대의 무신이자 군인, 정치가이다. 그는 최씨 4대가 집권하는 60여년의 첫 번째 지도자이다. 또한 정권 쟁탈로 혼란스러웠던 무신정권은 최충헌이 집권하며 안정기로들게 했다. 그의 자손인 최이(崔怡·崔瑀)—최항(崔沆·萬全)-최의(崔竩) 등 4대 60여 년 동안 그 정권을 계승하면서 이 집안은 당대 최고의 명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고종 45년(1258) 3월 무오정변(戊午政變) 때 최씨 무신정권이 몰락함에 따라 망성(亡姓)이 되기도 하였으나, 이 집안은 당대의 명문들과 혼인관계를 맺어 세력기반으로 삼고 있었다. 진주 유씨(晉州柳氏)·하동 정씨(河東鄭氏)·안동 김씨(安東金氏)·정안 임씨(定安任氏)·철원 최씨(鐵原崔氏)·영순 태씨(永順太氏)·횡성 조씨(橫城趙氏)·경주 김씨(慶州金氏)
참고 자료
『高麗史』.
『高麗史節要』.
민병하,『한국사』18, 「무신란과 초기의 무신정권」, 국사편찬위원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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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백,『한국사신론』, 일조각, 1999.
에드워드 슐츠, 『무신과 문신』, 글항아리, 2014.
박용운,『高麗時代史』下, 「무신정권과 그 사회」, 일지사, 1987.
민현구,『高麗政治史論』, 고려대학교출판부,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