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사 공부자료 (에도 막부, 개항, 개혁파, 메이지 유신)
- 최초 등록일
- 2020.11.12
- 최종 저작일
- 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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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일본, 에도 바쿠후는 저물고 상업 자본주의는 싹트다
2. 에도 바쿠후의 경제, 상업자본주의의 싹이 트다.
3. 일본, 아시아의 열강이 되다.
4. 국운을 건 개항
5. 변방의 개혁파, 중심에 서다.
6. 대장봉환과 메이지 유신
본문내용
오스만,무굴 제국, 중국의 청왕조…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아시아의 최대강국은 이 세나라 였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유럽국가의 침탈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직까지 서양 국가들은 동아시아사의 섬나라 일본을 노리지 않았고, 일본과 서양 국가들과의 교류는 이어지고 있었다. 일본은 16세기 중반부터 포르투갈과의 교역을 시작, 에스파냐로부터 가톨릭을 받아들였다. 이후 네덜란드와 깊은 관계를 맺는다.
에도 바쿠후는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바쿠후를 세우고 1605년에 도쿠가와 히데타다에게 쇼군의 자리를 넘겨 주었다.
에도 바쿠후의 쇼군, 절대 권력자가 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국 통일 작업을 완수 후 1616년 삶을 마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노력 덕에 초기 에도 바쿠후는 쇼군의 권력이 강함.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지방영주인 다이묘들을 세 등급으로 재정비하여 대우를 달리 했다.
가장 높은 등급은 도쿠가와 가문이 친척들에게만 주어진 신판다이묘다.
두번째 등급은 도쿠가와이에야스의 충신들에게 주어졌던 후다이다이묘,
최하위등급인 도자마다이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잡자 뒤늦게 합류한 다이묘들이다.
1615년 에도 바쿠후는 한 지역에 한 개의 성만 짓도록 하는 일국일성령을 내렸다.
또한, 도쿠가와 히데타다는 다이묘끼리 결혼할 때는 반드시 쇼군의 허락을 맡아야 했다. (권력차단)
제 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쓰는 바쿠후 의무근무제(산킨고타이 제도)를 실시하여 다이묘가 영지와 수도를 번갈아가며 1년씩 살도록 한 제도였다. 다이묘의 가족은 에도에 볼모로 잡아뒀지.
도자마다이묘들이 18세기 무렵부터 바쿠후를 타도하는데 앞장 섰다. 그들은 바쿠후 시대를 끝내고 메이지 정부를 세웠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12년, 가톨릭이 전파된 지 60여년 만에 금지령을 내렸다.
도쿠가와 이에미쓰는 가톨릭 금지령을 더욱 강화해 가톨릭을 전면 금지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