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문화가 없다고?
- 최초 등록일
- 2020.10.11
- 최종 저작일
- 20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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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인에게 문화가 없다고?"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1부 한국인, 어디로 가고 있나?
2. 2부 우리민족에게는 무엇이 있었을까?
3. 3부 우리 문화, 어디로 가야하나
본문내용
1부 한국인, 어디로 가고 있나?
한국은 기후같은 자연조건이나 지리적인 영향보다 종교의 영향력을 더 크게 받은 민족이다. 조선의 예를 들면 인생의 중요한 마디마다 종교적 의례로 채워져 있다. 한 사람이 태어나면 사당이나 뒷산 절에 무병장수를 빌었다. 그리고 죽음에 이를 때까지 크게 4번의 마디가 있다. 결혼을 해야 성년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성년이 될 때 관례(冠禮)가 있다. 그리고 성년식과 동일하게 여겨졌던 혼례(婚禮), 죽음을 맞이하면 치루는 장례를 상례(喪禮)라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례 이후에 계속 이어지는 제례(祭禮), 즉 제사가 있다.
관례도 그렇지만 혼례, 상례, 제례는 모두 유교식 가르침에 따라 치러진다. 지금은 세속화 물결 때문에 종교의 힘이 많이 쇠퇴했지만, 이전에 형성된 종교적인 사고나 관습의 틀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종교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된 유교와 조선왕조가 이어지는 동안 파트너 역할을 했던 무교가 그 주인공이다.
유교와 무교의 막강한 힘
유교와 무교가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유교는 조선의 사상을 만들고 지배했던 종교였다. 전 세계에 존재했던 나라 중에 가장 유교적인 나라는 유교가 만들어진 중국이 아니라 조선이었다. 그런 조선이 망한지 100년도 되지 않았다. 문화가 만들어지는데 100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가 있었지만, 일본역시 중국의 문화권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라다. 그래서 문화적으로 볼 때 현재의 대한민국은 조선 후기의 연장으로 간주할 수 있다.
무당으로 알려진 단군, 박혁거세, 남해차차웅 등으로부터 시작된 샤머니즘적인 무교의 역사는 우리 역사에서 단 한 번도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져 왔다. 종교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된 현대에 오히려 무당의 수가 늘어 20만이 넘는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한국인들은 유교의 질서의식과 샤머니즘적인 무질서의식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1. 유교가 우리에게 남긴 것
유교가 우리에게 남긴 것 중 가장 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가부장제’이다. 조선 초기까지 모계쪽이 강했던 우리나라가 유교의 부계사회가 된 것은 3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