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학의 관찬(官撰) 전통의 배경과 의의
- 최초 등록일
- 2020.08.03
- 최종 저작일
- 20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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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 사학의 관찬(官撰) 전통의 배경과 의의"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2. 중국 사학의 관찬 전통의 배경
2-1. 중국에서의 문자 언어 전통
2-2. 사관 성립의 전통
2-3. 중국 지식인들의 성격
2-4. 중국의 천하관
3. 중국 관찬 서술의 객관성의 요소
3-1. 정보에 관한 용이하고 방대한 접근성
3-2. 사권(史權) - 황제가 열람할 수 없는 전통
3-3. 포폄(褒貶)의 존재 – 사실과 평가의 분리
3-4. 기전체 방식이 보완하는 요소들
4.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중국 사학사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역사 이래 각 왕조 혹은 상고 시대부터 저술 당시까지를 다룬 형태의 ‘史’가 있었고 그것이 역사가 전개되면서 정사(正史)로서 편입되고 공인되었다는 점이다. 중국 사학에서 ‘정사’는 흔히 24史 혹은 25史라고 불린다. 하지만 오(吳)의 손권이 부하 여몽(呂蒙)에게 ‘3史와 여러 사람의 병서를 읽으니 크게 유익하다’는 말을 하는 등의 예에서 보듯이 정사(正史)의 범위는 어느 시대에 일시에 정해진 것이 아닌 누층적으로 확대되어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말은 역사의 편찬이 어느 시대에 단절이 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어져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편 이렇게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중국 사학에서의 역사 편찬은 현존하는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특히 당대(唐代) 이후에는 공식적으로 역사 서술 임무가 부여된 위원회나 관청이 꾸려져 편찬이 진행되는 경향이 지속된다. 하지만, 당대(唐代) 이전에 쓰였으며 높은 평가를 받아와 정사로 인정되었던 사마천의 『사기』, 반고의 『한서』, 범엽의 『후한서』 등을 살펴보면 왕조 권력에 깊숙이 관여하거나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접근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내용들을 싣고 있고 저자들도 왕조에 복무하는 관직을 갖고 있었으므로 개인의 저작을 넘어 사찬의 형태를 한 관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찬 사학 전통은 지나친 편파성으로 인한 객관성의 상실의 우려가 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국가에 의한 일방적 역사 편찬과 교육은 시각의 편향성을 낳을 수 있고, 다양한 학설과 이론을 장려하는 학문의 세계에서 그 발전을 해칠 수 있다. 현대의 중국 정부가 추진한 ‘하상주 단대공정’이나 ‘동북공정’, 대한민국의 국정교과서 논란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중국 사학의 관찬 전통은 자의적이고 편향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현재적 관점에서 중국 사학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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